금융 계열사와 공공기관이 채용 단계마다 성비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국책은행과 금융공공기관이 블라인드 신입채용 과정에서 합격 성비를 정해뒀다는 의혹이 나오고, 삼성‧한화 금융사들은 관련 서류를 근로감독 전에 무단 폐기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나온 요구다.

청년‧여성‧노동단체가 꾸린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합격자 성비를 채용 단계마다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에는 채용단계별 성비 공개를 의무화하라고 촉구했다.

▲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합격자 성비를 채용 단계마다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합격자 성비를 채용 단계마다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공동행동은 이날 “고의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삼성‧한화그룹의 서류 폐기를 규탄했다. 지난 23일 삼성‧한화그룹의 금융계열사 6곳(삼성생명보험‧삼성화재해상보험‧삼성카드‧삼성증권‧한화생명보험‧한화손해보험)이 고용노동부가 성차별 근로감독에 들어갔을 당시 채용 서류를 무단 폐기한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류를 폐기하면 과태료만 부과하지만, 성차별 채용이 드러나면 형사처벌 대상(5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지난 24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금융권의 신입직원 블라인드 채용 전후 합격자 성비가 동일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예탁결제원과 산업·​기업은행의 지난해 남녀 합격 비율은 65:35 수준이었다.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기 전과 같은 비율이다.

최미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는 “법률상으론 완벽한 남녀고용평등법을 갖추고 있다”며 “실행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7조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 수행에 필요 없는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합격자 성비를 채용 단계마다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합격자 성비를 채용 단계마다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공동행동은 정부가 기업의 성차별 채용을 수수방관한다고 비판했다. 최미진 대표는 “고용노동부는 성차별 근로감독에 나서서 수사 등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도 자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데 그쳤다”며 “결국 기업들은 문서를 폐기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금융기관의 성차별 채용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최 대표는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금융기관의 채용비리는 관행이었다’고 했는데, 범법행위에 대한 정부 관료의 인식이 어떤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공동행동은 기업들에도 채용 단계마다 합격 성비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정하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지난해 기업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지원자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최종성비에 맞춰 떨어뜨린 사실이 밝혀졌다”며 “점수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채용 성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채용비리가 불거진 후 은행권 채용 절차 모범규준에 ‘성비 공개’ 조항을 넣으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은행연합회는 지난 6월18일 해당 내용을 빼고 규준을 의결했다.

공동행동은 30일 민간기업과 공기업을 포함한 100대 기업과 전체 공공기관, 민간 금융계열사들에 ‘채용문화 개선을 위한 면접 가이드라인’ 5가지를 공문으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향후에도 채용성차별 신고 세터를 운영해 감시와 대응 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0일 100대 기업과 공공기관, 금융계열사에 공문으로 제안한 채용 면접 가이드라인. 사진=김예리 기자
▲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이 30일 100대 기업과 공공기관, 금융계열사에 공문으로 제안한 채용 면접 가이드라인. 사진=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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