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공동조사단)’이 31일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행을 비롯한 여성인권침해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결과를 발표했다.

공동조사단은 이날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력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6월부터 △피해 접수와 면담 △5·18 관련 자료 분석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 검토 등 3가지 경로로 조사를 진행했다.

공동조사단은 5달 동안 17건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피해자들 나이는 10~30대였다. 직업은 학생·주부·직장인 등 다양했다. 공동조사단은 “대다수가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사례는 시민군이 조직되기 전인 민주화운동 초반(5월19일~21일) 광주 시내에 집중됐다.

공동조사단은 “피해자들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채 피해 기억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면담 조사에서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성폭행 당한 것이 잊히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며 트라우마를 진술했다.

▲ ‘5·18 가두방송 주인공’으로 알려진 차명숙(57)씨가 5·18민중항쟁 38주년을 앞둔 30일 오전 광주광역시의회 기자실에서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 광산경찰서 등에서 진행된 여성에 대한 ‘고문·가혹행위’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5·18 가두방송 주인공’으로 알려진 차명숙(57)씨가 5·18민중항쟁 38주년을 앞둔 30일 오전 광주광역시의회 기자실에서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 광산경찰서 등에서 진행된 여성에 대한 ‘고문·가혹행위’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성추행, 성고문 피해도 다수 발견됐다. 공동조사단은 성추행과 연행과 구금 당시 성적 가혹행위를 총 42건 확인했다고 밝혔다. 직접 피해를 접수시킨 사례가 1건,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에서 확인한 사례가 33건, 문헌과 방송기록에서 확인한 사례가 8건이었다. 공동조사단은 “광주광역시 보상심의자료의 경우 개인정보 열람 한계가 있어 추가조사하지 않았다”며 “중복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앞으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목격 진술은 더 많았다. 증언은 계엄군이 △여고생 상의를 벗기고 유방부위에 칼을 꽂거나 △여성들을 강제로 차에 실어가고 △금남로 일대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들을 속옷만 입힌채 기합을 가하는 광경 등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국가인권위 쪽 조사담당자는 “성추행과 성희롱은 공개적 자리에서 발생해, 현장을 목격한 증언이 매우 많았다”고 했다.

조사단은 31일부로 활동을 종료해 추가조사가 과제로 남았다. 공동조사단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특별법)’ 범위(제3조)에 ‘성폭력’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상규명특별법에서 성폭력은 현재 ‘그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속한다.

가해자 조사‧처벌과 피해자 치유·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공동조사단은 “5·18에 참여한 군인이 양심고백할 여건을 마련하는 한편 현장 지휘관과 성폭력 행위자를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가해자를 확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까닭이다. 공동조사단은 또 피해자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하고 국가폭력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폭력 피해를 국가폭력으로 공식화해야한다고도 덧붙였다.

공동조사단은 특별법에 따라 출범을 앞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번 조사 자료를 넘기겠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소위원회를 따로 꾸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별법은 지난달 14일부터 시행 중이지만, 자유한국당이 진상조사위 위원 3명을 추천하지 않아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진상조사위는 국회의장 추천 1명과 더불어민주당 4명, 자유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1명이 추천해 9명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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