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연예오락프로그램 모니터링 당시 황당한 장면을 봤다. 권투에서 링 위에 올라가 두 사람이 싸움을 시작할 때 울리는 ‘땡’ 소리가 성폭력 보도 당시 효과음으로 나갔다.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 너희 링에서 한 번 싸워봐라. 진흙탕 싸움 한 번 해보자. 진실공방 하자는 의미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한국 연예오락 및 시사토크프로그램과 온라인 기사는 성폭력 사건에 가해 행위만을 자세히 묘사하고, 가해 행위를 희석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무엇보다 선정적으로 보도한다는 모니터링 결과가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30일 서울 마포구 국민TV카페 온에어에서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를 가졌다.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30일 서울 마포구 국민TV카페 온에어에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박서연 기자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30일 서울 마포구 국민TV카페 온에어에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여성민우회 제공 
사회를 맡은 정슬아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연예오락 및 시사토크프로그램이 미투 운동에 힘입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들을 가십으로 다루던 것과 달리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여전히 기사를 보거나 종편프로그램을 보면 과연 편집하기 전에 자막을 넣고 대본을 쓰면서 고민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성민우회 모니터링단은 지난 2월, 3월, 7월 3달간 지상파3사(KBS2TV·MBC,SBS)와 종합편성채널4사(채널A,MBN,TV조선,JTBC) 등 7개 채널에서 방영된 시사토크프로그램과 연예오락프로그램 24개 693편을 모니터링해 388건의 문제 장면을 분석했다. 민우회는 모니터링 도구 유형을 총 14개로 나눴다.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분석 결과 한국 시사토크프로그램이 미투 보도 때 보이는 가장 큰 문제는 가해 행위 상세 묘사(14.9%)였고, 성폭력을 정치공방으로 이용(12.2%),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적 태도(11.4%),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다루는 제목 사용(8.9%), 가해자 입장 받아쓰기(8.6%), 재판 당시 말한 증인의 말 검증 없이 내보내기(7.3%) 순이었다.

여성민우회는 TV조선의 경우 가해 행위만을 자세히 묘사하는 보도가 많았다고 밝혔다. SBS의 경우 모니터링 기간 내 문제 보도 건수는 적었지만 가장 나쁜 방송을 했다고 평가했다.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지난 3월29일 방영 당시 사회자인 김어준씨가 가해자로 지목된 정봉주씨의 주장을 스스로 나서서 검증해 줬고 이후 방송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한국 연예정보프로그램이 미투 관련 보도 당시 보이는 가장 큰 문제는 가해 행위를 희석하는 용어 사용(17.6%)이었고 가해 행위 자세히 묘사(16.1%), 선정적인 가십거리로 다루는 제목 사용와 가해자 입장 받아쓰기(13.2%),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적 태도(7.3%) 순이었다.

여성민우회는 MBC의 경우 문제 보도는 8건이었는데 이 중 4건이 가해 행위를 희석하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일례로 MBC ‘섹션TV연예통신’은 지난 3월4일 방영분에서 연예계 성폭력 소식을 보도하며 반복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와 성폭력이 아닌 ‘성추문’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 사진=한국여성민우회
▲ 여성민우회가 문제로 지적한 MBC방송화면 갈무리. 

KBS2TV는 13건의 문제 보도 중 5건이 성폭력을 가십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드는 선정적인 제목과 일러스트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KBS2TV ‘연예가중계’는 3월2일 방송분 화면에서는 선정적인 기사 제목을 모아 만든 일러스트 화면이 방영됐다.

정슬아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언론사가 성폭력을 보도하면서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부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여성민우회가 밝힌 가해 행위를 희석한 기자제목의 일부다. “검은손·나쁜입으로 울고 웃겼나…연예계 덮친 ‘미투’”(매일경제 2월23일), “남궁연 측 성추문에 ‘모멸감 느껴, 법적대응 끝까지 갈 것’”(뉴스엔 3월6일), “‘성추문’ 오달수 ‘난 이미 덫에 걸린 짐승처럼 피폐해졌다’”(뉴스엔 2월28일), “성추문 하용부 ‘모두 내 잘못, 다 내려놓겠다’”(연합뉴스 2월26일), “교수 뿐 아니라 학생도 ‘몹쓸짓’…개강 앞둔 대학가 폭로 이어져”(문화일보 2월28일).

다음은 선정적 기사 제목의 일부다. “딸 같다며 바지 내린 의원님”…국회 게시판에도 미투(중앙일보 3월7일), “[단독] 안희정 측 ‘두 고소인과 성관계는 애정행위…더연과도 무관’”(뉴시스 3월16일), “‘너도 아빠같은 놈에게 당해봐야’ 비뚤어진 분노”(동아일보 3월12일), “‘혀가 쑥~’ 미투에 민병두 의원직 사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정봉주에 이어 또 휘청”(세계일보 3월15일), “[단독] 강의 중 ‘여자 X먹는 법’ 소개한 국민대 교수”(국민일보 3월16일).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소라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연구위원장은 ‘성희롱·성폭력 사건 이렇게 보도해주세요’라는 가이드라인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뒤 “가이드라인은 이제 충분하다. 모니터링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제제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남지현 경향신문 기자는 언론사 보도국 안에서 변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남 기자는 “경향신문 안에서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보도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여성 이슈를 단순 사건 사고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나 구조적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길게 보고 언론사가 구성원 전체가 따라가려는 쟁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뉴스 수용자가 이상한 기사를 클릭하지 않는다면 언론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상한 기사를 쓰지 않을 거다. 수용자의 책임도 놓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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