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31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례적으로 청와대 출입기자의 질문에 공식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답했다.

전날 미국 재무부로부터 한국의 한 은행이 secondary boycott(북한 송금 위반 제재)를 받는다는 뉴스가 11월 중 보도된다는 일명 지라시 내용이 확산된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김의겸 대변인이 내놓은 답변이다.

지라시에는 “주가가 무려 20% 가까이 폭락하는데도 연기금이 투여되지 않은 이유도 이 세컨더리 보이콧 뉴스가 언제 터질지 몰라서”라면서 “외국인들이 묻지마 매도를 하는 이유도 금리 때문보다 이 핵폭탄급 뉴스 때문”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청와대 한 출입기자는 “‘미국 정부가 우리 은행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하려고 했다’ 이런 지라시가 돌았다. 그러면 청와대가 파악하고 있기에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거론하거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논의하거나 이런 전례는 전혀 없었다라고 저희가 봐도 되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김 대변인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라시에 난 내용을 가지고 출입기자가 공식 질문하고 거기에 공식 답변해야 하는지, 그런 가치가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금융위원회도 보도 참고자료로 “미국 정부가 북한 송금과 연관된 은행에 경제적 제재(Secondary Boycott)를 추진하며 미국 재무부에서 지난 12일 한국 은행들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는 풍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풍문 유포과정을 즉각 조사하여 위법행위 적발 시 관련 절차를 거쳐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김의겸 대변인은 오보나 사실관계를 다르게 해석하는 언론 보도를 바로잡거나 반박해왔지만 기자의 질문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경우는 없었다.

해당 질문에 어떤 식으로 답변하든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려고 ‘답할 가치가 없다’는 답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김의겸 대변인의 답변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사실관계가 불투명한 지라시를 언급하면서 자초했다는 비판과 함께 자리시를 통해 이미 잘못된 시그널이 확산된 마당에 청와대가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가운데서 기자가 이에 입장을 물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청와대는 북한과 경제협력 문제를 서두르는 우리 정부와 대북제재 틀 안에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으로 인해 한미 간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언론 보도에도 민감한 모습이다.

이날 중앙일보는 1면에 배치한 <美, 방북 4대기업에도 전화…대북 경협사업 직접체크>라는 기사에서 “주한 미국 대사관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했던 삼성 등 국내 4대 기업을 비롯해 대북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산림청과 직접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주한 미 대사관이 삼성·현대차·SK·LG 등 지난달 방북했던 주요 기업 등에 직접 전화해 방북 과정에서 논의됐던 기업 차원의 협력사업 추진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남북 간에 진행되는 대북 사업의 현황을 파악하려는 목적과 함께 북·미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한·미 간 속도를 맞추려고 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에 “미국 정부가 청와대나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국내 은행에 이어 민간 기업까지 잇따라 접촉에 나선 건 이례적”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남북 경협 과속을 우려한 탓에 미국 정부가 민간 분야에 속도 조절 등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중앙일보 보도를 염두에 두고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에 대해서 대북제재 위반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도 역시 우리의 뜻과 다르지 않다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김 대변인은 “일단 전제 자체에 대해서 지금 하신 말은 경고, 견제 이런 표현을 썼는데 그것 자체가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미국 정부(주한 대사관)가 기업과 접촉해 직접 의사 표현(경협 관련 추진 현황 파악)을 한 것은 정부 입장에서 이례적인 게 아니냐는 질문에도 “청와대가 그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 한 이후 한미간 워킹 그룹을 설치하기로 합의한 내용 역시 대북제재 틀 속 남북관계 개선 속도 조절을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비건 대표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잇따라 만났다. 로버트 팔라디노 미국무부 대변인이 비건 특별대표의 방한에 대해 “이번 방문의 목적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딘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들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비건 대표 방한 후 워킹그룹을 설치하기로 합의하면서 한미 간 대북제재 공조에 무게를 둔 장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김의겸 대변인은 워킹그룹이 제재완화에 무게를 둔 건지 기존 대북제재를 준수하기 위한 것인지 기구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서 한미 사이에 보다 긴밀한 논의를 하기 위한 기구로 안다”며 “대표(비건 특별대표) 혼자의 차원을 넘어서서 좀 더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자 하는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주면 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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