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합의안. 역시 강사들에겐 재난이 될 거 같습니다. 합의된 강사법은 임금, 퇴직금 등을 주게 돼있고(...)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지난학기 대략 550명 정도의 시간강사가 강의를 했는데 예산 등의 사정을 이유로 150명으로 줄여야 한답니다. (...)좋은 세상 만들고 싶다고들 만든 법일텐데 세상은 왜 점점 이렇게 나빠져가는 것인지.”

지난 25일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올해 8월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가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강사법)을 협의했고, 이들은 협의안대로 2019년 1월1일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이진경 교수는 자신이 소속된 학교에서는 강사법에 대비해 강사들을 대량해고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 법이 ‘대학구조조정법’이라고 표현했다. 이진경 교수는 3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한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유예가 된 이유는 현실적으로 이법이 만들 결과가 ‘대량해고’이기 때문”이라며 “이 법이 시행되면 강사들이 대량해고 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치나 우려가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지난 25일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일부.
▲ 지난 25일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일부.
3차례 유예됐던 강사법…2019년 개선안 시행 전 대학은 또 강사 감축 시도

일명 강사법은 이미 3차례 유예된 적 있다. 2010년 5월 조선대학교 고 서정민 강사가 논문대필 문제와 교수가 되려면 돈을 내라는 제안 등을 유서에 언급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강사법 제정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꾸려졌고, 교원 지위인정과 1년 이상의 계약으로 강사를 임용하고 4대 보험 등을 보장하는 내용의 ‘강사제도 개선방안’이 발표됐다. 이는 고등교육법 제14조의 ‘교원’ 구분에 강사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2012년 12월 유예안이 통과됐고 이후에도 2차례 더 유예됐다.(2013년12월31일, 2015년 12월31일 유예안 통과) 

비용부담을 이유로 대학들이 강사들을 ‘대량해고’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고 실제로 대학들이 예산문제와, 전임교원비율이 높아야 높은 점수가 나오는 대학평가 등을 근거로 들며 강사들을 해고해왔다. 실제로 강사법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많은 이들도 당시의 법은 성급하게 만들어져 실정에 맞지않는다는 평가를 내려왔다.

2019년 시행될 강사법은 ‘대학 강사제도 개선협의회’를 통해 마련된 강사법 개선안이다. 2016년부터 강사대표, 대학대표, 국회 추천 등 위원들이 모인 대학강사제도 정책자문위원회가 협의회로 발전돼 만들었으며 올해 8월 개선안을 발표했다. 강사법 개선안은 △교원 신분을 부여하고 △임용 기간을 1년 이상 임용을 원칙으로 하며 △강사 임용 절차는 공개임용(공개채용)으로 하고 △강사와 겸·초빙교원은 매주 6시간 이하 수업을 원칙으로 하며 △방학기간 중 임금 지급 △강의시간 관계없이 퇴직금 지급 등이 주요내용이다.

그러나 시행을 앞두고 또 대학들은 강사 인원 감축을 시도하고 있다. 9월3일자 중대신문 ‘내년 1학기까지 시간강사 절반으로 저정 예정’기사에 따르면 중앙대는 “강사법 시행에 따라 2019년 1월까지 현재의 절반수준인 500명을 감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진경 교수의 지적처럼 서울과학기술대학 역시 강사 감축은 기정사실이라고 밝혔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무과 측은 3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확실한 인원이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강사법과 대학평가 등에 대비해 시간강사를 줄이는 방향은 맞다”며 “당장 내년에 법이 시행될텐데 지금까지도 교육부는 예산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학교 측은 지금까지의 예산 정도로 예측을 하고 대응방안을 짜고 있다. 때문에 강사들의 방학 동안의 급여, 퇴직금, 4대 보험 등을 고려하면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 중대신문은 중앙대가 강사법 시행에 대비해 시간강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중앙대의 입장을 보도했다.
▲ 중대신문은 중앙대가 강사법 시행에 대비해 시간강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중앙대의 입장을 보도했다.
“분노의 대상은 강사법 자체가 아니라 대학으로 향해야…법 시행 촉구”

강사법 합의안을 만든 이들은 대량해고를 부르는 건 ‘강사법’ 때문이 아니라 대학 탓이라며 다시는 강사법을 유예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협의회의 추천단체로 참여했던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전강노) 소속으로 12년째 서울 여의도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김영곤·김동애씨는 대학이 예산 때문에 강사 인원을 단축한다는 건 ‘핑계’라고 말했다.

김동애씨는 “현재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나오지 않나. 그런데 사립유치원을 제대로 잡자고 하니까 사립유치원쪽에서 폐원하겠다고 그런다. 이런 상황에서 폐원하겠다는 사립유치원을 욕해야지, 비리를 제대로 잡겠다는 법안을 욕하면 맞는 일인가. 강사법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동애씨는 “강사를 대량해고하는 것은 강사법 자체가 아니라 대학이다. 비판의 목소리가 대학을 향해야하지 노조나 강사법 자체를 유예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며 “대학이 예산이 없어서 강사들을 자르겠다고 하면, 적립금 내역이나 연구기금, 건축 기금 등을 꺼내서 쓰라고 요구해야지 강사법을 유예하라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강사들이 방학 때 강의료를 받고, 4대 보험료와 퇴직금 등을 받게되면 기존의 강사에게 지급하던 예산에서 63%정도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대학 전체 예산으로 치면 1% 증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관련해 강철구 전 이화여대 교수는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중앙대의 경우, 2018년도 예산 가운데 강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교원급여 995억원9000만 원에 각종 수당을 합쳐 총 1066억6000만원이다. 반면 시간강사료는 96억5000만 원에 불과한다”며 “강사법이 시행되도 중앙대 전체 예산 3945억에 비하면 1.2%에서 1.5%로 늘어나는 수준으로 크게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강사법 제정과 시행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서 천막농성을 해온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의 김동애씨. 김동애씨는 김영곤씨와 함께 4000여일이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김영곤씨 제공.
▲ 강사법 제정과 시행을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근처에서 천막농성을 해온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의 김동애씨. 김동애씨는 김영곤씨와 함께 4000여일이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김영곤씨 제공.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법 시행과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예산 배정’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측에서는 예산을 핑계로 대량해고를 할 것이 불보듯 뻔하니, 교육부에서 강사법 시행을 대처해 예산을 배정하면 대량해고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임순광 위원장은 “강사법 합의안이 나오니까 대학은 늘 그랬듯이 학생들의 이수학점을 줄이고, 강의 최대수강인원을 늘리고 폐강기준을 완화하는 등 강사를 줄이려고 한다”며 “현실적으로 대학이 강사들에게 주는 돈을 다 대라고 하면 강사를 자르겠지만 예산이 배정되면 자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특히 이번 협의안 중 겸·초빙교원에 대한 조항을 신설한 것도 눈여겨봐야한다고 꼽았다. 보통 대학들은 강사들을 자르고 초빙교수나 겸임교수의 형태로 채용을 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들은 재임용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없고 연봉 조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협의안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겸·초빙교원에 대한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겸·초빙교원 역시 강사와 같이 1년 이상 약정을 하고 퇴직금을 지급해야한다는 조항도 있다. 임 위원장은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 그냥 강사를 쓰지 굳이 겸·초빙교원을 써야하는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임순광 위원장은 또한 교육부가 서둘러 대학들에 메시지를 던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대학이 강사법 취지에 맞지 않게 강사를 대량 줄이거나 강사법을 방해하려고 하는 경우 부정적 평가를 줄 수 있다는 지침을 발표해야 한다”며 “강사법 취지를 살릴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면 된다”고 전했다.

▲ 26일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천막 안에서 지난 8월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 보고서'를 펼쳐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26일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천막 안에서 지난 8월 '대학 강사제도 개선 협의회 보고서'를 펼쳐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협의회에 강사 몫으로 참여한 채효정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라도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채씨는 “대학은 예산문제를 들며 강사들을 해고하려고 하지만 국립대의 경우에는 정부에 예산 청구가 가능하고, 사립대는 재정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며 “그런데 중요한 점은 법이 있어야 예산을 집행할 근거가 생기기에 빨리 법을 시행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산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대학 측은 대량해고를 강행할 것이라는 의견도 여전하다. 이진경 교수는 “예산이 충분히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이미 학교에서는 예산이 나온다고하더라도 시간강사들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입장이 정해졌다”며 “지금 당장 강사들의 재난을 막는 방법은 정부나 국회를 통해서 대학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을 일단 중지시키도록 하고, 강사들의 임금을 순차적으로 올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에 차려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천막 옆에는 고 서정민 조선대학교 강사의 유서가 놓여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에 차려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천막 옆에는 고 서정민 조선대학교 강사의 유서가 놓여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 외에도 강사의 교원 직위 부여나 처우 개선 외에도 협의안은 강사 공개채용을 명시하고 있는 점도 논쟁이 있다. 이진경 교수는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량해고가 진행되는 현실도 문제지만 공개채용을 하는 부분도 문제가 있다”며 “공개채용을 하게되면 실적과 경력 위주로 사람을 뽑게 되는게 그렇게되면 학교를 막 수료하거나 졸업하 사람들은 강사로 채용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내)대학원을 진학하겠나. 대학원이 사라진 대학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채효정 경희대 해고강사는 “현재 공개채용이 아닌 상황에서 강사 채용은 개인의 연줄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강의배정권도 교수에게 있어서 각종 갑질문제가 일어난다”며 “공채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신규인력이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다”고 반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