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리지 마세요. 당당하게 들어가세요. 우리가 한 게 비리가 아니잖아요.”

검은 옷을 입은 한유총 소속 원장과 이사장들이 30일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2전시장 6홀에서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교육부가 25일 발표한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놓고 향후 대응방향을 논하는 자리였다. 전날 한유총은 참석자들에게 정부 대책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상하의를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하라고 공지했다.

▲ 검정으로 옷 색깔을 맞춰 입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이사장과 원장들이 30일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대책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검정으로 옷 색깔을 맞춰 입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이사장과 원장들이 30일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대책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30일 검정으로 옷 색깔을 맞춰 입고 토론회에 입장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이사장과 원장들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30일 검정으로 옷 색깔을 맞춰 입고 토론회에 입장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이사장과 원장들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폭로로 국민 분노가 일자 교육부는 유치원의 공공성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골자는 3가지다. △2020년까지 사립유치원에 국가교육회계시스템 ‘에듀파인’을 도입하고 △상시적으로 사립유치원을 감사해 결과를 공개하며 △국공립유치원 취원률을 예정(2022년)보다 빨리 4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더민주와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학부모·교육단체는 이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11시 예정이었으나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계속 들어와 12시께 시작됐다. 한유총 측은 “홀 내부에 마련한 좌석은 3000석이나, 4000명 이상이 참석해 바닥에 앉은 사람도 많았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이날 토론을 비공개 내부 회의로 진행했다. 한유총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한유총 소속 유치원 설립자와 원장에게만 입장을 허용하고 한유총 상징이 그려진 스티커를 배부했다. 스티커를 확인하고 출입을 통제하는 한 비대위 위원은 “원장이 아니면 유치원 내 다른 간부도 들어갈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주최측과 대다수 참가자는 언론을 비롯한 외부 인사가 던지는 질문을 경계했다. 한유총 스티커를 붙인 한 참가자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이게(최근 언론 보도) 바로 악마의 편집이지. 공정하게 써 달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어떤 견해를 반영하길 바라는지 묻자 이 참가자는 “기자와 얘기 안 한다”고 말한 뒤 돌아섰다.

▲ 30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토론회 주최측은 이사장·원장들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30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토론회 주최측은 이사장·원장들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30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연 대토론회는 외부를 경계하는 방침과 분위기로 진행됐다. 주최측은 화장실 일부에도 출입통제하는 펜스와 칸막이를 세웠다. 사진=김예리 기자
▲ 30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연 대토론회는 외부를 경계하는 방침과 분위기로 진행됐다. 주최측은 화장실 일부에도 출입통제하는 펜스와 칸막이를 세웠다. 사진=김예리 기자

일부 인터뷰에 응한 유치원 설립자와 원장은 정부 대책과 언론 보도가 ‘너무 일방향’이라고 성토했다.

인천에서 온 유치원 설립자 A씨는 “언론이 지나치게 대중을 호도해 사립유치원 측을 죽여놨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 대책에는 “사립유치원에 모든 것을 헌납하라며 범법자로 몰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한유총은 그간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에 ‘시설사용료’를 새로 넣어달라고 주장해왔다. 공교육을 사립기관이 해결해주는 대가로 정부가 유치원에 일종의 ‘임대료’를 달라는 취지다. 유은혜 교육부총리는 “(사립 초중등학교에선) 이런 경우가 없다. 유치원은 학교이고 교육기관이지 임대사업자가 아니잖느냐”고 지적했다.

토론장 바깥 로비에선 한 유치원 설립자가 ‘폐원하겠다’고 소리쳐 10여분 간 소동이 일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유치원 이사장이라고 밝힌 B씨는 본인이 가져온 ‘이사장님’이라고 쓰인 청소기를 들어보이며 기자들을 향해 호소했다. B씨는 “이 청소기로 매일 유치원을 청소했다. 아이들과 손자들 부끄럽게 사느니 문 닫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십 명의 기자가 B씨를 따라붙자 일행이 기자들을 제지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B씨의 아들이라고 밝힌 같은 유치원 원장 C씨는 현재 처지를 “잘못도 있었고, 실수도 인정하지만 앞뒤 사정 없이 질타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본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이 이번에 공개된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에 포함됐다고 했다. 그는 “월 50만원, 총 2000만원의 현금운용비를 택배비로 썼다. 유치원 운영비로 썼기에 감사 결과가 억울했지만 바로 보전하고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 뒤 이렇게 명단이 발표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경기도 수원에 있는 유치원 이사장이라고 밝힌 B씨는 ‘손자들 부끄럽게 사느니 유치원 문을 닫겠다’며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 경기도 수원에 있는 유치원 이사장이라고 밝힌 B씨는 ‘손자들 부끄럽게 사느니 유치원 문을 닫겠다’며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경기도 안산에 있는 S유치원 설립자라고 본인을 소개한 D씨는 “이대로 대책이 통과되면 유치원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본인 유치원이 ‘비리 명단’에 없었다고 밝힌 D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다. 정부와 소통창구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유치원 운영자들 중에는 크게 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소곤소곤하는 소리도 많다”고 했다. D씨는 여론에 보도된 이른바 ‘비리 제보교사 블랙리스트’는 사실이 아니라며 “요즘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1년 이내에 그만두는 교사들은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고들 생각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날 토론은 4시30분쯤까지 계속됐다. 토론회가 끝난 뒤 한유총 비대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대한민국 유아교육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교육자로 양심에 따라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립유치원 교지와 교사는 사유재산이며, 국공립에 편중해 지원하고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유총은 정부 당국과 사립유치원 그리고 교육전문가가 모이는 간담회도 요청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3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2차 토론회를 연다고 밝혔다. 박용진 의원실은 “한유총과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에도 토론 참석을 요청했다. 전사연은 불참 의사를 전했으나 한유총은 아무런 답을 해오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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