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일본 군수업체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으로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피해보상을 청구한지 13년 만에 피해보상권리를 최종 확정받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30일 “신일철주금이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4인에게 각 1억원씩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피해자 여운택·신천수·이춘식·김규수씨 등 4인은 1941~1944년 간 일본제철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했다. 노역이 끝난지 74년 만에 확정판결이 나왔다.

핵심 쟁점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없어지는지였다. 주요 4개 쟁점 중 유일하게 대법관 간 판단이 갈린 쟁점이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민중의소리
▲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민중의소리

대법관 다수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은 불법적이었고, 이와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적용대상이 아니라 판단했다.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한일협정 조항에 적혀 있더라도 협정 자체가 일본 식민지배 불법성을 전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형·김선수 대법관은 “다수의견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는 취지로 보충의견을 냈다.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며, 대한민국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피해자)의 권리행사가 제한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또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법원 판결은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일본의 패소 판결이 한국에까지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봤다. 피해자 2인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내기 전 일본에서 같은 소송을 냈다 패소한 데 대해 영향이 없다고 확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밖에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현 신일철주금에게 물을 수 있으며 △손해보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신일철주금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3년 재상고된 재판이 판결까지 5년 넘게 걸린 까닭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판결을 미루는 대가로 외교부로부터 파견 법관 자리 등을 얻어내려 한 계획이 문건으로 발견됐다.

이 때문에 피해자 중 생존해있는 이춘식(98)씨는 지난 8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썩었고 법관도 썩었다. 새 정부는 이 사건을 깨끗하게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검찰은 추악한 재판거래에 가담한 박근혜, 양승태, 김기춘, 황교안, 윤병세, 차한성 등 모든 관계자들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나머지 피해자 중 여운택·신천수씨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들은 2005년 1월 경 한일청구권 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후인 같은 해 2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1, 2심에서 패소했으나 2012년 대법원이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파기환송해 재판을 이어갔다.

파기환송심 또한 신일철주금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위자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원고가 2013년 9월 재상고해 2018년 10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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