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가족 채용 현황에서 시작된 고용세습 논란 보도는 처음부터 노동조합 책임론이었다. 보도를 주도한 조선일보·중앙일보는 채용율만 가지고 ‘귀족노조 비리’라 정했다. 이후 보름동안 자유한국당 거짓주장 받아쓰기, 팩트없는 의혹보도 등이 이어지며 프레임이 강화됐다.

노조 책임론이 거짓인 이유는 지금까지 근거가 나오지 않아서다. 채용비리엔 인사청탁, 특혜 가산점을 이용한 임원급 개인 비리가 많다. 화살을 ‘노조’에 돌리려면 인사권 없는 단체가 어떤 부정행위를 통해 집단적으로 개입했는지를 말해야 한다. 보수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근거는 하나다. “노조가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해서” 책임이라는 것이다.

언론이 뻥튀기 한 ‘가족 채용 비리’

‘친·인척 채용=비리’는 과장됐다. 언론은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마사회 등의 친·인척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황 자체를 채용비리로 간주했다.

▲ 공기업 내 가족채용 비율을 '귀족노조 비리이자 이기주의'라 비판한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 디자인=이우림기자, 사진=연합뉴스
▲ 공기업 내 가족채용 비율을 '귀족노조 비리이자 이기주의'라 비판한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 디자인=이우림기자, 사진=연합뉴스

한국도로공사 경우 정규직 전환된 상황관리원 58명 중 4명이 친인척이었다. 언론은 4명 중 1명이 4급 공무원과 형제관계로 밝혀졌고, 58명이 모두 노조 조합원이라 강조했다. 이 1명은 2016년 1월 용역업체에 입사했다. 박근혜 정부 때다.

한국가스공사는 전환 대상 1203명 중 33명이 기존 임직원과 4촌 이내 친·인척이었다. 이들 중 2명이 2급 직원의 처남과 여동생으로 확인됐고 각각 경비, 청소 용역노동자였다. 한국가스공사는 ‘33명 모두 2017년 7월 이전에 채용된 누적인원’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당선돼 7월 정규직화 방침을 발표했다. 현 정부 이전 입사를 곧 ‘정규직화 비리’로 보는 건 과하다.

‘가족채용=노조비리’도 과장됐다. 인천공항공사가 대표적이다. 확인된 사례 모두 노조와 관련없는 협력업체 사장·본부장·차장 등의 채용비리였다. TV조선 등은 이를 ‘노조도 비리 의혹이 있다’는 의심과 함께 뭉뚱그려 내보냈다.

강렬했던 1보, 자유한국당과 콜라보

가족 채용이 곧 비리로, 비리가 노조 탓이 된 배경엔 강렬했던 최초 보도가 있다. 중앙일보는 서울교통공사 전환자 1285명 중 108명(8.4%)이 재직자 친·인척이라며 첫 날부터 “청년층 고용 참사와 귀족노조의 일자리 대물림” 사설을 썼다. 섣불리 ‘귀족노조 이기주의’ 프레임을 이용했다.

서울교통공사노조도 과장보도 피해를 봤다. 108명 중 34명은 2016년 5월 구의역 참사 이전부터 일했다. 108명 중 26명은 3급 이상 고위직 친·인척이었다. 3급 이상은 통상 노조가입을 못하거나 안한다. 고위직 친·인척 중에도 ‘정당한 정규직원’은 있다. 식당 조리원인 인사처장 아내는 2001년 계약직으로 입사해 2007년 무기직이 됐고 정규직화 방침에 따라 올해 일반직으로 편입됐다.

▲ 2016년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전신)와 전동차 경정비 업무 위탁계약을 맺은 프로종합관리 소속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민중의소리
▲ 2016년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전신)와 전동차 경정비 업무 위탁계약을 맺은 프로종합관리 소속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민중의소리

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 과정을 왜곡한 보도가 이어지며 프레임은 강화됐다. 기사 “고용세습에 날아간 청년 일자리 1029개”(중앙)는 ‘친인척 정규직화 하느라 공채 인원 1029명 줄었다’고 지적했으나 인력은 정규직화와 무관한 이유로 감축됐다. ‘2012년부터 정규직화를 노리고 무기직으로 입사해 정규직 된 친인척이 많다’고 한 동아일보 논리는 이명박 정부 때 6년 후 있을 정규직화를 예측하고 입사했다는 말이다.

언론은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거짓 주장도 거르지 않고 받아썼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30년간 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 추가 예산만 1조3400억원”이라 주장했다.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은 “식당 조리원이 18년 근무하면 18호봉이 돼 연봉 7000만원 받는다”고 했다. 유민봉 의원은 ‘비정규직이 사무직 자리까지 요구했다’고 밝혔다. 모두 거짓이거나 불분명하다. 21~30년차 조리원 모두 연봉 3200여만원을 받는다.

감사는 진행돼야… 채용비리≠정규직화

노조와 채용비리 간 유일한 연결고리는 노조가 정규직화를 적극 추진한 데 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정규직화를 노조가 추진했으니 비리도 노조 책임’이라는 논리다. 특히 ‘쉬운 정규직화’에 방점이 찍힌다. 공채는 수십대 1에 육박하는 필기 시험을 거치는데 기존 비정규직들은 그런 경쟁을 거치지 않고 입사해 채용비리를 거르지 못했다는 논리다.

채용비리는 정규직화 정책과 무관하다. 인사청탁이 입사 경쟁률과 무관한 것과 같다. 경쟁률이 높은 강원랜드 정규직, 우리은행·신한은행 등 금융권 채용비리가 반증이다. 보수언론 논리대로면, 높은 경쟁률을 스스로 통과한 친·인척 정규직원도 비리 증거가 된다.

‘가족이 입사할 수 있으니 정규직화 과정을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기존 비정규직을 무시한다. 정규직화 기본 방침은 일자리 뿐 아니라 기존 직원까지 함께 정규직으로 승계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길게는 20년 넘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오·남용했다. 고용형태만 바뀌는데 기존 직원의 높은 탈락율을 예정한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채용 감독 체계를 보완·강화하는게 대안이다.

조사는 진행돼야 한다. 채용비리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진상이 규명되고 그에 따른 처벌과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언론은 실제 비리를 파헤치지 않고 정상 채용까지 비리로 몰거나 그 책임을 근거없이 노조에 돌렸다. 이번 보도의 맹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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