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결혼식을 앞두고 해고됐던 사내 비정규직 직원에게 조선일보가 후속 조치 없이 사안을 뭉개고 있다는 내부 비판이 제기됐다.

조선일보 조판을 담당했던 여성 직원 A씨는 올해 초 조선일보를 떠나야 했다. 청첩장 다발을 쇼핑백에 담아 출근했다가 하루 아침에 해직자 신세가 됐다. 그는 신문 지면을 컴퓨터로 제작하는 조판팀 팀원이었다. 조판팀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그는 2004년 입사해 해외에 다녀온 1년을 빼면 조선일보 본사에서 약 13년을 일했다. 1998년 IMF 이전에는 조판팀도 조선일보 소속이었으나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된 후 인력 파견 전문 ㄱ업체 소속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조선일보와 ㄱ업체는 사내하청 도급 관계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박준동)은 지난 5월 이 같은 소식을 ‘조선노보’에서 전하며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본사 갑질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A씨는 자신이 잘린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ㄱ파견업체 관리자는 “조선일보 본사 편집 담당 간부가 요구한다”고만 했다. 하청업체로선 본사 요구를 수용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 노조에 따르면 ㄱ파견업체는 A씨에게 퇴사 거부 시 대기 발령을 받아 업무에서 배제돼 그냥 자리를 지켜야 된다며 ‘버티든지 앞으로 3개월분 급여를 받고 권고사직 형식으로 퇴사하든지 택하라’고 했다. 버틸 힘이 없던 A씨는 지난 3월 사직서를 썼다.

해고 이유를 짐작할 만한 사건은 있다. A씨는 당시 조판팀 팀원들 업무량을 늘리고 근무 기강을 잡겠다며 조선일보 편집 담당 간부들이 소집한 회의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쉬는 날을 줄이라’는 요구에 ‘곤란하다’고 반기를 들었다.

노조에 따르면 본사 간부들은 “팀장들을 포함해 5명을 자르겠다”고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파견업체 관리자 만류로 결국 2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매듭됐다. 2명 가운데 1명이 A씨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직 의사가 없는 노동자가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내는 권고사직은 근로기준법상 ‘해고’로 분류된다. 이를 이유로 노조는 조선일보 간부의 해고 압박은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의 근거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조선일보 편집 담당 간부들은 노조에 “권고사직을 시킬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며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노보 발행 이후 편집부 소속 일부 조합원들은 사내에 “이번 일은 편집부의 근무 요청을 조판팀이 거부하면서 시작됐다”면서 박 위원장이 조판팀 직원 두 사람이 그만두게 된 과정과 원인에 대해 노보에서 거론한 편집 간부들이나 심지어 편집부 대의원에게 기본적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노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고 사태가 발생하고 지난 6개월여 동안 해고자에 대한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은 지난 25일 사내에 “사측은 지금까지 그에게 복직을 타진하지도, 관련 노동자들 최저임금 인상분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를 10년 다녀도 월 200만 원이 안 될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박 위원장은 △A씨가 속한 팀의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었고 매년 최저임금이 오를 때 수당을 깎아 기본급을 올리는 편법을 썼느냐 여부 △본사 간부들이 조판팀을 대상으로 업무량을 늘리고 근무기강을 잡겠다며 소집한 회의에서 언쟁이 있었느냐 여부 △본사 간부들이 “팀장들을 포함해 5명을 자르겠다”고 밀어붙이다가 파견업체 관리자 만류로 결국 2명을 해고했느냐 여부 등에 회사가 반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부들이 해고 사유로 제기한 노동자의 인성 문제는 진실도 아니고 해고 사유도 안 된다. 게다가 위장도급 관계가 아니라면 다른 회사 노동자들의 해고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월권”이라며 “사측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외통수 상황이었다. 해고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해고했다고 주장했으니 직접 고용관계인 위장도급을 인정한 셈이고 위장도급이 아닌 다른 회사라고 주장하기엔 간부들의 해고 개입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를 겨냥해 “1조원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놓은 언론사 안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지출을 막기 위해 서무 직원 수를 줄이고 식당 운영 시간을 줄여 이용자와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고 수당 돌려막기로 임금을 동결하는데 누구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하겠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나아가 “몇몇 간부들의 일탈이나 갑질의 문제가 아니다. 간부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 관리자로서 직분을 수행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회사가 미필적 고의에 의해 갑질을 조장한 셈”이라며 “조선시대엔 서자 차별이 있었고 조선일보엔 하청 차별이 있다. 사내 하청은 철저한 갑을 관계 구조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같은 회사 직원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은 30일 조선일보 측에 후속 조치 관련 입장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노보에서 이처럼 사주와 경영진을 비판해온 박 위원장은 ‘노보 사유화’라고 비판하는 노조 대의원들 의견을 수용해 현재는 노보 제작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1988년 조선일보 노조 출범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박 위원장은 두 번째 임기 1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노보 사유화 논란 이후 박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책임질 것을 계속 요구한다면 탄핵 또는 불신임 투표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노조 대의원들은 탄핵이나 불신임 투표 없이 내달 1일 선거 공고를 한 뒤 예정대로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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