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교 교사의 발언과 교육방식을 문제 삼은 조선일보 보도를 법원이 상당 부분 허위로 보고 교사에게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교사 최아무개씨가 조선일보와 취재기자에게 낸 정정보도 및 500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조선일보와 취재기자가 함께 최 교사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라”며 지난 27일 최 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판결확정일로부터 7일 이내에 조선일보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8월 “수업시간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이란 기사에서 교사 최 교사의 발언과 교육내용 등을 문제 삼았다. 최 교사는 지난해 9월 조선일보와 취재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최 교사는 조선일보 보도 중 △일부 학부모가 지난해 7월 수업시간에 퀴어축제 동영상을 보여준 뒤 학생들 사이에서 ‘야 너 게이냐’ 등의 말이 유행했다고 주장한 부분 △학부모들은 최 교사가 평소 남자아이들에게 ‘말 안 듣고 별난 것들은 죄다 남자’라고 질책한 일을 문제 삼았다는 부분 등을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조선일보·취재기자)들은 지난해 8월 해당 학교 학부모대의원회에서 작성한 자료를 제공받아 해당 부분을 보도했는데 조사대상의 범위나 사례수집 기간이 제한적이었고 구체적 작성자나 진술자가 밝혀지지 않았으며 자료의 정확성·일관성이 부족하다”며 취재자료의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최 교사의 교육방식을 문제 삼고 조선일보에 학생의 피해사례를 제보했던 학교의 일부 학부모들은 최 교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학부모였다. 실제 재판에서도 조선일보 측 증인으로 나오겠다던 학부모는 두차례 변론에 모두 나오지 않았지만 최 교사 측은 자신을 일년 간 담임교사로 경험한 학부모가 출석해 간담회와 재판에서 최 교사의 교육방식에 문제가 없었고,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의 일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최 교사는 조선일보 보도 중 자신이 직접 ‘메갈리아’ 회원이라고 트위터에 밝혔다는 것도 허위라고 주장했다. 해당 부분은 조선일보가 입증해야 하는데 재판부는 “아무런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허위로 판단했다.

또한 최 교사는 조선일보 보도 중 △자신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남성을 비난한 트윗 1000여 건을 삭제했다는 부분 △간담회에서 학부모 220여명이 수업중단을 요구했다는 부분 역시 허위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조선일보 측은 최 교사가 삭제한 트윗이 남성을 비난한 내용인지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막연한 추측으로 작성됐을 여지가 많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 교사가 조선일보 보도 약 두 달 전 닷페이스와 인터뷰해 자신의 신상이 드러났고 가족 신상까지 밝혀져 사생활 침해를 우려해 트윗을 지웠다는 주장 등을 참고했다.

▲ 조선일보 지난해 8월25일자 사회면 보도. 서울중앙지법은 조선일보 측이 최아무개 교사에게 400만원을 배상하고 7일 이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판결했다.
▲ 조선일보 지난해 8월25일자 사회면 보도. 서울중앙지법은 조선일보 측이 최아무개 교사에게 400만원을 배상하고 7일 이내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고 판결했다.

최 교사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부분도 일부 있다. 최 교사는 조선일보 보도 중 최 교사가 ‘메갈리아’ 회원이라고 한 부분, 트위터에서 최 교사가 리트윗한 글 중 ‘한남충’ 등의 표현이 있었는데 최 교사가 직접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왜곡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를 최 교사가 입증해야 할 부분으로 봤는데 최 교사가 메갈리아 회원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어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리트윗이란 해당 글을 일부만 공감하거나 심지어 반대할 때도 사용하는 기능인데 재판부는 최 교사가 리트윗한 내용을 직접 표현한 것처럼 간주했다.

재판부는 기사에 최 교사의 입장이 담기지 않은 것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학부모 간담회 녹취자료를 보면 최 교사의 교육방식을 옹호하는 의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조선일보 측은 기사 내용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며 “교장이나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의견을 싣기는 했지만 최 교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내용이어서 최 교사의 반론권을 보장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한편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단체는 “최 교사가 왜곡된 성교육을 한다”며 조선일보 보도에 나온 내용과 비슷한 취지로 최 교사를 고발했지만 지난 4월 서울동부지검은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최 교사는 마지막 변론에서 “당시 사이버상의 극심한 피해를 당하는 중이었고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언론이라면 무엇이 사실이고 허위인지 취재했어야 한다”며 “당사자(최 교사)·간담회 자리에 있던 교사 등 기본 취재과정만 거쳤더라도 허위로 가득한 기사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판결이 내가 바라는 대로 난다해도 거대 언론사에게 받은 사회적 낙인,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매도됐던 고통의 시간도 되돌릴 수 없다”며 “다만 다른 누군가 이런 일을 더는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