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민투표 계획 발표가 있자 일부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대만이 탈원전 정책 폐기에 나선 것처럼 기사를 쏟아냈다. 작년 8월 발생한 ‘블랙아웃(대정전)’ 때문에 국민들의 탈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며, 고질적인 전력난에 “얼마나 국민들이 답답했으면 탈원전 폐기 청원운동을 벌여 국민투표를 성사시켰겠는가”라고 사설을 쓴 언론도 있었다. 그러면서 “대만이 왜 탈원전 폐기에 나서는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 관련기사 : 조선일보) 전력 불안 대만, 탈원전 정책 폐기여부 국민투표 ]
[ 관련기사 : 서울경제) 사설-탈원전 폐기 나서는 대만의 교훈 ]

그간 국내 언론의 대만 핵발전소 상황 왜곡하기는 도를 지나쳤다. 먼저 작년 8월 블랙아웃의 직접적인 원인은 인적 실수였다. LNG 발전소 직원이 밸브 조작 실수로 연료 공급이 중단시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문제가 된 가스발전단지는 대만 전체 전력설비의 약 12%가 모여있는 곳으로 여기에 문제가 생겨 대만 전체로 정전이 확산된 것이다. 중앙집중형 전력설비의 취약점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였던 것이다. 국내 핵산업계와 일부 언론은 이 상황을 두고 “핵발전소만 있었더라면”이라고 탄식하고 있지만, 실제 대만 현지 전문가들은 공급설비 부족을 원인으로 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대만이 탈원전정책 때문에 가동을 중단했던 핵발전소 2기를 여름철 전력수급부족으로 서둘러 재가동했다는 소식은 더 황당하다. 기사엔 마치 탈원전으로 폐쇄되었던 핵발전소를 재가동한 것처럼 썼지만, 실제 이들 핵발전소의 폐쇄시점은 2023~2024년이기 때문이다. 이 중 한 기는 비상디젤발전기 이상으로 지난 4월 가동을 멈췄다가 재가동한 것이고, 또 한 기는 2016년 화재로 가동을 멈췄던 것을 재가동하기 위해 대만전력공사가 재가동 신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잦은 고장으로 논란이 되었던 이 발전소는 아직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핵발전소의 재가동은 탈원전정책과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승-전-탈원전”으로 모두 탈원전정책의 폐해로 지적되고 있다.

▲ 투표. ⓒ gettyimagesbank
▲ 투표. ⓒ gettyimagesbank
대만 국민투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 같은 국가중요사건에 맞춰 진행되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만도 유권자의 1.5%인 약 28만 명 서명만 있으면 국민투표가 진행된다.(우리나라 유권자로 대입하면 약 68만명) 국민투표 규정이 간소하다보니 이번 국민투표 안건이 무려 10개이다. 이중 5건은 동성 결혼에 대한 찬반여부, 동성애 교육 유무 등 젠더 이슈이며, 탈핵이나 에너지 이슈가 4건이다. 이 중에는 2025년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시키는 전기사업법 조항을 폐지할지 묻는 안건도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의 생산 전력생산량을 매년 평균 1%씩 감축 동의나 석탄화력발전소 증설 반대 정책에 동의를 묻는 항목도 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조치를 계속할지에 대한 안건도 있다. 에너지 분야 안건 4건 중 3건이 탈핵-에너지전환에 대한 동의를 묻는 항목이다. 이것이 어떻게 “탈원전정책에 답답한 국민들”의 염원이란 말인가? 오히려 국민투표 제도를 활용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국민 전체가 결정하려는 ‘직접 민주주의적 실험’이 느껴지지 않는가? 반면 핵발전소 폐기법 반대 국민투표 청원은 일부 서명이 요건에 미달하여 소송과 추가 서명을 거쳐 겨우 주민투표 요건을 충족시켰다.

국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만 국민들이 핵발전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결과는 있는 그대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까지 왜곡하며 현란한 제목으로 국민들을 선동하는 일부 우리 언론의 태도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잠시만 검색해보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는 세상에서 편향된 정보원에 근거해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이는 게으르거나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세마저 저버린 것이 아닐까 반문해봤으면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