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장(원안위)이 사퇴하면서 원안위 위원 9명 가운데 5명이 원자력이용자단체의 연구과제 수탁 결격사유로 줄줄이 사퇴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모두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의 이른바 ‘원자력 전문가’로 선임된 사람들이었다. 원자력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원자력업계와 유착을 제한하기 위한 법 조항에 모조리 걸려 사퇴함에 따라 이른바 전문가들의 업계 유착 관행이 얼마나 만연해 있었는지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원자력계를 감시해야할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에 원자력 전공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 더 문제이며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정민 원안위원장은 지난 2015년 카이스트 초빙교수 재직시절 원자력연구원이 의뢰한 연구과제 참여자 명단에 포함돼 해외출장비 명목으로 274만원을 받은 사실이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았다. 이후 추가로 수백만원을 더 썼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결국 강 위원장은 29일 종합국감 당일 아침 사직서를 제출해 바로 수리됐다.

원안위는 이재기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장, 손동성 울산과학기술원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 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등 3인과 김무환 포항공과대학교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를 지난 7월19일 비상임위원 직에서 해촉했다. 이재기 손동성 정재준 위원 역시 원자력연구원으로부터 위탁연구과제 책임자로 참여해 모두 7억여원의 연구개발비를 받은 사실이 감사원 감사결과 적발됐다. 이들이 사임서를 내자 김무환 위원도 함께 동반사임했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김 위원 역시 비슷한 시기 연구과제를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5인은 모두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이다. 9명의 위원회 안에 같은 대학 동문이 과반이 넘었고, 이들이 모두 법에서 금지하는 결격사유에 해당돼 그만 둔 것은 원자력계의 유착 불감증이 만연해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과한 법률 제10조(결격사유) 제1항의 5는 “최근 3년 이내 원자력이용자 또는 원자력이용자단체로부터 연구개발과제를 수탁하는 등 원자력이용자 또는 원자력이용자단체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하였거나 관여하고 있는 사람”에 해당되는 위원은 그 직에서 당연 퇴직한다고 규정했다.

원안위는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조항을 개선하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위기다. 임종윤 원자력안전위원회 혁신기획담당관은 “규정상의 표현이 다소 애매모호하다는 부분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용자, 이용자 단체’, ‘사업 관여한다’는 표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방향에서 법령을 개선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에 있다. 2기 원자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유착이 다른 분야보다 만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전 세계 어느 분야가 이렇겠나. 아주 무디고 이런 문제를 들여다 보려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제가 위원일 때 김혜정 위원과 함께 공식 회의에서 ‘한수원에 연구비 받은 사람은 위원 자격이 없지 않느냐’고 제기했는데도 ‘다 받았는데 뭘 그러냐’며 그냥 넘어가더라. 그때도 위원에 원자력 전공자가 많았다”고 전했다.

▲ 7년전 사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원자로 건물 외부 모습. 지난해 2월27일 촬영. 원자로 건물 외부는 사고 당시처럼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고 지붕 쪽에서는 수소 폭발로 무너져 내린 지붕이 자갈 더미가 돼 남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 7년전 사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원자로 건물 외부 모습. 지난해 2월27일 촬영. 원자로 건물 외부는 사고 당시처럼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고 지붕 쪽에서는 수소 폭발로 무너져 내린 지붕이 자갈 더미가 돼 남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교수는 “법을 무시하다가 이제사 이런 문제가 터졌다. 다른 외부 잣대로 내부를 측정해본 적이 없었다. 청산해야 할 원자력계의 적폐다. 피감기관 돈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감시를 하느냐. 당연히 청산해야 할 전형적인 부패구조다. 피감기관 돈을 받은 위원이 전체 위원회의 절반이 넘는 그런 위원회는 어느 분야에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원자력전공자가 많은 것을 두고 김 교수는 “이들은 원안위원은 꼭 핵공학전공자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문제는 이들과 피감 대상기관인 원자력연구원이나 한국수력원자력과 너무 친하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핵공학과를 나와야만 전문가 소리를 듣는다. 원자력 전공자만 원자력 안전을 도맡을 필요는 없다. 그동안 핵공학과 출신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유착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원안위가 이런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뽑은 게 문제다. 이제는 오히려 원안위가 좋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유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비를 받은 사람이 원안위원을 할 수 없게 한 규정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제안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연구과제를 안받으면 일을 할 수 없는 구조가 있고, 원안위법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가 그런 사람을 찾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헌석 대표는 “새로 생긴 규정이 아니다. 이미 있는 규정을 적용한 것인데, 기준을 낮추자는 것은 맞지 않다. 원자력 전문가도 위원 중에 포함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결격사유 기준이 ‘최근 3년이내에 연구과제 받지 않은 사람’이다. 아예 한번도 안한 사람을 고르라는 것이 아니다. 이건 다른 기준과 비교해도 높은 기준이 아니다. 탈핵과 친핵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원안위원 선정 기준에 대해 “철학을 갖고 있느냐, 전문성이 있느냐, 윤리 도덕적으로 한수원 사업자와 유착관계에 있는 이력이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윤 원안위 담당관은 “기금출처 다양성 확보 등의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기금의 독립성을 보장할 방안도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 전남 영광군 홍농읍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영광군 문과광광 홈페이지
▲ 전남 영광군 홍농읍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영광군 문과광광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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