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의 작은 섬 우퇴위아섬에 ‘가짜 경찰’이 나타났다. 가짜 경찰 신분증과 제복을 입은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였다. 

당시 섬에는 노동당 청년동맹 여름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있었고, 브레이비크는 이들을 향해 약 50분 동안 총기를 난사했다. 경찰로 위장한 그는 어떤 의심도 받지 않은 채 섬에 진입했을 뿐 아니라, 경찰의 지시로 가장해 청소년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은 뒤 총격을 시작했다. 그는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이었던 69명을 사살했고 섬에 오기 전 자행했던 총리공관 폭탄 테러로 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르웨이 최악의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됐다.

▲ 노르웨이 최악의 테러를 일으킨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
▲ 노르웨이 최악의 테러를 일으킨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 사진=나무위키

 

극우 민족주의자가 공권력으로 위장해 자행한 참사 이틀 후,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응답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 그리고 더 많은 인도주의입니다.”

노르웨이 총리의 추도사를 끔찍한 테러에 대한 이상적인 대응이나 정치적 발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후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가 7년 동안 활동하며 ‘신념’을 키워온 우파정당 진보당의 반성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극우 민족주의를 낳은 노르웨이의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이 되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추도사가 여전히 기억나는 이유는 참사에 대처한 총리의 ‘언어’ 때문이다.

▲ 노르웨이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 사진=나무위키
▲ 노르웨이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 사진=나무위키

 

7년 전 공권력으로 위장한 가짜 경찰의 테러가 생각난 것은 최근 몇 주 째 계속되는 ‘진실로 위장한 가짜 뉴스’ 때문이다. 77명의 희생자를 낸 총기 테러와 그 정의도 모호한 가짜 뉴스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짓과 혐오로 가득한 저열한 언어가 순식간에 확대돼 약자와 소수자에 꽂은 비수는 또 다른 테러에 다름 아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허위와 왜곡으로 조제된 문자와 영상이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보만을 찾는 이들에게 전달돼 혐오와 폭력에 무감하게 만들 가능성 때문이다.

가짜 뉴스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였는지 정부와 국회가 강력한 규제안을 논의중이다. 대응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문건은 가짜뉴스에 대한 관계당국의 인식 수준, 특히 그 언어의 수준을 보여준다. 

허위조작정보의 생산-유통-소비 단계를 구분하고 각 단계별로 정부부처, 사업자, 민간의 역할을 명시한 ‘대응 방안’은 그 자체로 총체적 관료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강력한 단속 및 제작 유통 소비 단계별 대응방안을 마련”하라는 국무총리의 지시사항이 문자 그대로 문건의 목차가 됐다.

문건 속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에서 지금 정부가 가짜뉴스를 대하는 조급함과 두려움이 엿보인다. 연일 정부의 가짜 뉴스 대응방안을 주제로 열리는 토론회에서 제기되는 우려는 결코 가짜 뉴스에 대한 방임이나 인정을 주문하는 자리가 아니다. 

가짜 뉴스 반대와 가짜 뉴스 대책에 대한 반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부대책이 논란인 까닭은 가짜 뉴스라는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이유가 분명하지 않아서다. 

정권 비판으로 읽힐 “국론의 분열과 민주주의의 교란”이 아니라 “왜곡과 혐오로 상처받고 침묵하는 이들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함”이었다면 어땠을까. 

노르웨이 총리의 추도사가 떠오른 것은 그의 발언에서 테러에 대한 분노보다 ‘부족한 민주주의와 개방성, 그리고 인도주의’라는 원인에 대한 인식이 느껴져서다. 가짜 뉴스라는 중요한 시험 과목이 정부에 주어졌다. 순서는 문제의 정확한 이해지 성급한 답안 작성이 아니다.

▲ 노르웨이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 사진=나무위키
▲ 노르웨이 극우청년 아르네스트 베링 브레이비크의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 사진=나무위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