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점검 과정에서 종편이 유사한 프로그램에 상이한 장르를 명시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장르 편성 비율 제한이 재승인 조건으로 부과되면서 종편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이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종편 편성 점검 현황에 따르면 TV조선이 시사 프로그램 ‘강적들’을 ‘버라이어티쇼’로 분류해 제출했다. 유사한 프로그램인 JTBC ‘썰전’이 ‘시사논평’ 장르로 분류해 제출한 것과 대조적이다.

TV조선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데는 지난해 부과된 종편 재승인 조건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방통위는 종편에 세부 15개 장르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뉴스’ ‘시사논평’ ‘탐사보도’ ‘토론대담’ 등 4개 장르의 합이 특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재승인 조건을 부과했다. 지난해 7월1일부터 12월말까지 TV조선은 33% 이내로 관련 장르를 편성해야 하는데, TV조선은 30.05%로 제출해 재승인 조건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 TV조선 '강적들' 화면 갈무리.
▲ TV조선 '강적들' 화면 갈무리.

그러나 이는 ‘강적들’을 ‘버라이어티쇼’로 편성해 제외한 결과다. 방통위에 따르면 ‘시사논평 장르’는 국내외 시사 쟁점 관련 보도내용에 대해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뜻하기에  ‘강적들’은 시사논평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반면 ‘버라이어티쇼’는 토크 버라이어티 쇼, 연예정보 쇼, 토크 쇼, 연예시상식, 시청자 비디오 모음 등의 오락 쇼 프로그램이다.

방통위 편성정책과로부터 제출받은 종편 편성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TV조선 ‘강적들’의 편성 비율은 2.85%다. TV조선 편성 제출 내역에 ‘강적들’을 더하면 32.9%에 달해 편성 한도(33%)에 임박한다. 만일 또 다른 프로그램까지 유사한 방식으로 장르를 제출했다면 재승인 조건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 시정명령이 불가피하다.

방송법상 방송 장르는 보도·교양·오락 등 3가지지만, 날이 갈수록 장르가 세분화되고 경계가 모호한 점이 많아 종편 재승인 조건에 한해 세부 15개 장르를 제시했는데 이마저도 맹점을 드러냈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종편 편성 현황 재승인 점검 자료 .
▲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종편 편성 현황 재승인 점검 자료 .

방통위는 종편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쓰지 않고 검증 절차를 거친다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사업자가 제출한 장르 판단에 대한 적정성 검증 중”이라며 “방통위와 사업자가 판단한 개별 프로그램의 장르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경우 전문가들을 통해 장르 판정 등도 병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통위는 아직 위원회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제 장르 판정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만일 방통위가 ‘강적들’의 장르를 재분류하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없는 건 아니다. 방통위가 지금까지 장르 구분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기에 TV조선도 반박의 여지가 있다.

종편 재승인 기준에 따르면 ‘강적들’ ‘썰전’같은 시사 토크 프로그램도 시사논평 프로그램으로 분류하는 게 적절하지만 방통위가 지난 8월 공개한 N스크린 조사 결과에는 JTBC ‘썰전’을 비롯한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오락’으로 분류했다. 

한 종편 관계자는 “같은 방통위 내에서도 편성을 담당하는 부서와 재승인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르 판단 기준이 다르다”며 “방통위가 제대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고, 왜 종편에 한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승인 조건 점검 외에 보도·교양·오락 등 3가지 장르 편성의 경우 방송사가 신고한 내역 그대로 반영하는데 이 역시 방송사마다 판단이 상이했다. 유사한 프로그램인 JTBC ‘썰전’과 MBN ‘판도라’는 교양인 반면 TV조선 ‘강적들’과 채널A ‘외부자들’은 오락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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