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계약율이 1.9%에 불과해 지적 받았던 KBS가 오는 29일부터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조항은 방송작가 노동자성과 연관될 수 있어 지속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KBS는 25일 “KBS에서 일하는 700여 명 작가들이 이번 표준계약서 도입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게 될 것”이라며 △원고료의 금액과 지급 시기 △부당한 계약 취소와 부당한 원고 집필 중지 및 원고 인도 거부 행위 금지 △원고에 대한 저작권 및 2차적 사용 시 권리관계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계약서는 원고를 작성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하며, 자료조사요원이나 원고 작성 외 업무를 하는 경우 별도 계약서를 준비 중으로 알려졌다.

KBS가 시행하겠다고 밝힌 표준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표준계약서와 다소 차이가 있다. KBS 역시 “문체부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를 준용한 자체 표준계약서”라고 명시했다. KBS 관계자는 “문체부 안을 조금 수정해 구체화했다고 보면 된다”며 “방송작가협회와 논의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차이가 있는 건 계약 내용과 기간 조항이다. KBS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제출한 계약서 안을 문체부 안과 비교해보면, 원고료 지급 기준의 경우 문체부 안은 ‘지급시기’나 ‘내역별’ 중 선택하도록 한 것과 달리 KBS는 ‘회당’ 또는 ‘내역별’ 선택이 가능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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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기간의 경우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약정한 집필 횟수가 남았으면 방송사와 작가가 상호 합의해 기간을 변경하도록 한 건 동일하다. 다만 KBS 계약서에는 프로그램의 사정과 관련한 조항이 추가됐다. 계약기간을 ‘특정된 기간 또는 프로그램 종료 시까지로 하되, 둘 중 먼저 도래하는 날짜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계약기간 변경의 경우 개편, 편성변경, 원고 수정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당사자 간 합의로 변경하도록 한 문체부 안에 ‘단 (프로그램) 개편, 폐지 등 방송사의 사정을 이유로 계약 만기 이전에 계약을 종료하고자 할 경우 해당 작가의 마지막 방송시점으로부터 4주 이상의 기간을 두고 통보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작가와 계약기간은 논쟁적인 부분이다. 앞서 비정규직 직접고용을 추진한 tbs도 기타 직군 프리랜서들이 1년짜리 계약서를 체결하지만, 방송작가들은 ‘다음 개편 때까지’를 명시한 계약을 요구 받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작가’로 통칭되는 직군 안에서도 근속기간이나 업무 형태 및 내용이 다양한 상황에서 한 프로그램의 방송기간을 계약기준으로 일원화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이어진다.

김유경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프로그램이 개편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근속기간이나 근무형태와 상관없이 작가들이 그만둬야 하는 관행이 있는데, 이를 공식 계약서에 명시해 시장에서 기준을 마련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계약서는 당사자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큰 효력을 발휘하기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7~8년을 한 방송사에서만 일했던 작가라도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군 말 없이 나가겠다는 것을 합의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프로그램 개편 시 작가와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느냐는 작가의 노동자성 문제와 직결되는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그는 “법적으로 해고 서면통지를 한 달 전에 하도록 돼 있는 점을 의식해 4주라는 기간을 둔 것 아닌가 생각된다”며 “해당 조항이 위법소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노동자의 근무기간이나 업무내용, 선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국가기간 방송사이자 공영방송인 KBS는 특성상 타 방송사가 준용하는 기준이 되기에 특히 신중한 고민이 요구된다. 박선숙 의원은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회사가 일방으로 작성한 고용계약서는 계약해지 등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데 활용될 소지가 있다”며 “(문체부) 표준계약서 지침을 이행해 방송제작환경을 개선해나가는 데 앞장서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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