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국회 동의를 얻지 않고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 의결한 것은 위헌이라는 야당의 주장에 반박하려고 헌법 3조를 들어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김 대변인 발언은 24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나왔다. 자유한국당과 언론이 남북군사합의서는 국가안전보장을 규정한 헌법 60조에 따라 조약 대상이고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를 위반했으니 위헌이라고 주장하자 내놓은 발언이다.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규정에 따라 북한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군사합의서는 조약 대상이 될 수 없고 국회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김 대변인의 발언은 그 자체로 파장을 일으켰다. 과거 보수정권과 현 야당은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반대로 현 정권이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리공방으로 보면 김 대변인 발언은 야당 주장에 반박이 될 수 있고, 오히려 야당이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의 실체를 인정할 수 있느냐는 공세적 성격도 있었다.

야당이 국회 비준 동의 의결을 주장하다 그토록 반대했던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지는 것을 그리면서 ‘회심의 반격’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하지만 김 대변인의 발언은 향후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자유한국당과 언론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과거 문 대통령의 자서전 내용과 입장을 들어 재반격하고 있다.

김 대변인도 25일 브리핑에서 자신의 발언에 따라 법리 공방을 넘어 북한의 실체 문제로 논란이 확산되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김 대변인은 “북한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면서 “우리 헌법이나 국가보안법에서는 남북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지 않고 있다. 그에 반해서 유엔이나 국제법적인 차원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변인은 “제가 어제 한 말은 평양공동선언 비준을 하는 게 위헌이라고 주장하니 그렇다면 헌법적 측면에서 판단해보자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헌법적 차원의 북한 지위만 부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을 부연 설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신의 발언을 거둬들인 것이다.

비록 헌법 3조에 규정된 내용이지만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를 인정해야지만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에 3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도 있다.

영토와 관련된 내용은 정전협정 제1조 1항에 반영돼 있다.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각각 2킬로미터씩 후퇴해 비무장지대를 만들고 이남지역은 대한민국 영토로 한다고 돼 있다. 정전협정과 헌법 제3조는 완전히 모순된다. 둘 중 하나의 규정은 모순된 규정으로도 볼 수 있다. 실질적인 영토 규정은 정전협정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헌법 3조는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3조가 곧바로 4조와 충돌하기 때문에 손을 봐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광민 변호사는 “헌법 쉽게 읽기”라는 책에서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고 선언한다. 평화적 통일은 남한이나 북한 어느 한쪽이 주체가 되어 상대를 흡수하는 흡수통일과는 다른 개념이다. 평화적 통일은 양측이 대화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통일이다”며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는 것인 통일의 전제가 된다.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헌법 제3조는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제4조는 북한과 대화를 하라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헌법 제5조 1항은 대화를 통한 통일이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해야 한다고도 규정돼 있다.

김 변호사는 “헌법 제3조의 영토 규정은 실현 가능성이 없고 헌법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 조항”이라며 “만약 헌법이 개정된다면 제3조의 삭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이 야당의 공세를 논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향후 남북관계와 정부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대변인이 남북합의서는 한민족공동체 내부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간의 합의로 보와 헌법상 조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만 강조했더라도 충분히 국회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야당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헌법 3조 규정을 부인하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라고 밀어붙였지만 오히려 향후 정부의 입장이 군색해질 수 있어 패착이 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하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북한 입장에서도 인정키 어려운 내용이다. 지난 1991년 남북은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국가 지위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당장 연내 약속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시 대변인의 발언을 빌미로 삼아 국가 정상의 방문이 아니라며 정부의 입장을 요구한다면 답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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