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물괴’ ‘협상’ 등 올해 100억 원 이상 투입한 영화의 흥행 참패가 주 52시간제 도입때문이라는 한국경제신문 보도가 논란을 일으켰다. 대기업이 소유한 이 신문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 52시간제를 흥행 참패 이유로 꼽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기사가 언급한 영화들의 제작 시기가 주 52시간이 본격 도입되기 전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경제는 논란이 됐던 온라인 기사의 부제를 수정하고 일부 문단도 들어냈다.

유재혁 한국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는 지난 24일 오후 “제작비 100억 이상 대작 잇단 참패… 영화계 ‘충격’”이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냈다. 기사 부제 중 한 대목이 “흥행 참패 이유는 ‘52시간제’로 하루 8시간 촬영, 배우·스태프 인건비 크게 올라”였다.

▲ ‘명당’ ‘물괴’ ‘협상’ 등 올해 100억 원 이상 투입한 영화의 흥행 참패가 주 52시간제 때문이라는 한국경제신문 보도가 논란이다. 왼쪽은 24일 수정되기 전 온라인 보도. 오른쪽은 25일 수정된 뒤 온라인 보도.
▲ ‘명당’ ‘물괴’ ‘협상’ 등 올해 100억 원 이상 투입한 영화의 흥행 참패가 주 52시간제 때문이라는 한국경제신문 보도가 논란이다. 왼쪽은 24일 수정되기 전 온라인 보도. 오른쪽은 25일 수정된 뒤 온라인 보도.
또 원(原) 기사 본문에는 ①“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촬영시간을 하루 8시간 이내로 맞추려다 보니 촬영일수가 크게 늘었다”는 익명의 제작사 관계자 멘트 ②“촬영 기간이 늘면 인건비, 숙식비, 장비대여료 등이 모두 상승한다. 초과 근로시간 임금도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분석 등이 있었다.

논란이 커진 뒤인 25일 오전, 기사는 대폭 수정됐다. 부제는 “흥행참패 이유는 짧아진 추석연휴…관객수 10%↓”로 수정됐고 ①과 ②도 삭제됐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한경 내부에서도 이 기사는 논란이었다. 25일 하영춘 한경 편집국장에 따르면, 24일 온라인 기사가 출고된 후인 오후 6시 가판(시중에 풀리지 않는, 신문사가 처음 찍어내는 지면 초판)을 두고 열리는 편집회의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말 안 되는 논리를 억지로 갖다붙였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25일자 지면에서 “흥행 참패 이유는 ‘52시간제’로 하루 8시간 촬영”이라는 대목의 부제가 수정됐다.

그러나 25일자 지면에 ①과 ② 부분이 그대로 실렸고, 뒤늦게나마 이날 오전 온라인에서 ①과 ②가 삭제됐다. 하 국장은 “순전히 우리가 잘못한 것이고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 25일자 한국경제 31면. 빨간 네모로 표시한 대목은 온라인 보도에서 삭제됐다.
▲ 25일자 한국경제 31면. 빨간 네모로 표시한 대목은 온라인 보도에서 삭제됐다.
기사 쓴 기자의 입장도 들었다. 유재혁 기자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맥락이 있었다”며 “제작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올해 주 52시간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영화 제작 시점)부터 촬영 현장에서 하루 8시간 촬영 원칙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실제 그로 인해 제작비가 올랐다고 한다”고 말했다.

유 기자는 “그 부분을 분명히 하지 않은 건 내 실수”라며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려고 쓴 기사가 아니다. 제작자가 한 말을 무심코 썼다”고 말했다. 제작사 관계자 멘트 취지와 정확한 맥락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해명이다.

해당 기사를 두고 영화계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권명환 전국영화산업노조 영화인신문고팀장은 25일 통화에서 “영화 제작 시기는 주 52시간 도입과 상관없을 때”라며 “크랭크 인(crank in·영화 촬영을 시작한다는 뜻의 단어)한 지 1년 정도된 영화도 있는데, 의도적으로 주 52시간을 갖다붙인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주 52시간 도입 이후 몇몇 현장을 제외하곤 시간을 준수하려고 한다. 제작 현장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방송 제작 현장처럼 영화 현장도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일부 노력은 있지만 제도가 정착했다고 볼 수 없다. 여전히 노동시간이 과도한 현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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