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정부가 조선일보를 동원해 한국은행 금리인하를 압박했다는 정황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구체적 정황이 공개돼 한국은행과 국회, 언론계까지 논란이 거세다. 반면 조선일보는 침묵하고 있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2015년 2월과 3월 당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문자는 “강효상 선배와 논의했습니다. 기획기사로 세게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자료 이진석에게 이미 넘겼습니다”(2015년 2월11일), “형님 조선이 약속대로 세게 도와줬으니 한은이 금리 50bp(0.5%P) 내리도록 서별관회의 열어서 말씀하셔야 합니다”(2015년 3월3일) 등의 내용이었다. 문자가 지목한 ‘강효상 선배’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문자가 오갔을 때 강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다.

▲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사진=KBS 뉴스9 리포트
▲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사진=KBS 뉴스9 리포트
당시 조선일보 한은 출입기자이자 경제부 차장으로 2015년 3월2일과 3일 ‘우물 안의 韓銀’이라는 기획 꼭지를 싣고 금리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이는 이진석 기자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획기사에서 “세계 중앙은행들은 불황을 막으려고 금리를 내리고 돈 풀기 전쟁”에 나섰는데 “한국은행만 과거 정책에 얽매”이고 있다며 금리인하 필요성을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사설에서도 “한국은행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처럼 고용 확대를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실제 한은은 조선일보 보도 이후 2015년 3월12일 기준금리를 1.75%로 0.25%P 인하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 부양을 뒷받침하는 조처였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금리인하가 이뤄졌고 정 부위원장과 조선일보의 사전 조율을 암시하는 문자가 공개되자 ‘박근혜 정부-조선일보-한국은행’ 간 금리인하 3각 커넥션 의혹이 일고 있다.

이진석 조선일보 기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기자는 “문자메시지 보도를 봤는데, 자료를 언급한 대목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당시 기획보도(‘우물 안의 韓銀’)를 보면 알겠지만 어디서 자료를 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후배·동료 기자들의 전수 조사 및 취재를 바탕으로 실린 보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나는 차장이었는데 그 위에 수석차장, 부장, 국장이 있었다”며 “국장이나 사장에게 직접 지시 받지 않는다. (강효상 국장을 언급한) 문자 내용이 어떤 취지인지 알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강 의원도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일보는 누구 부탁 받아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그런 언론이 아니”라며 “한국은행이 조선일보 보도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기관인가. 조선일보를 너무 과대 평가하는 것 아닌가”라고 썼다. 정찬우 전 부위원장은 국외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2일 국회 국감에서 “정부로부터 압박 받은 적 없다”며 “정부가 압박한다고 해서 금통위가 따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 조선일보 2015년 3월2일자 1면.
▲ 조선일보 2015년 3월2일자 1면.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하지만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노조는 23일 성명을 통해 “설령 외부 개입에 따라 금리인하를 단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부 등이 한국은행 금리 결정에 개입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은 직원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치욕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도 “주고 받은 문자를 볼 때 기사 청탁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의혹, 최소한 유력 신문의 편집국장이 며칠 뒤 나갈 기사를 정부와 청와대에 미리 알려 줬다는 의혹을 사기 충분하다. 국회가 반드시 청문회를 열어 정권에 의한 신문 편집권 훼손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 내부는 조용하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나오는 보도들을 유심히 봤지만 조선일보 내부는 잠잠하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23일자 사설에서 “정권과 언론사로 이어지는 ‘부적절한 유착’ 정황만 해도 놀랍다”며 “행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유착 관계의 실상을 밝히고 기록으로 남겨 재발 방지의 경계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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