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등포경찰서가 KBS 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KBS 부사장, 진실미래위)의 직원 이메일 열람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KBS는 경찰이 무리한 수사로 정치 관여 논란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영등포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은 23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KBS에 수사관 15명을 보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 했으나 KBS 측 반발로 낮 12시30분쯤 철수했다.

앞서 25년차 이상 직원 위주의 보수성향 소수노조 KBS 공영노동조합(위원장 성창경, 공영노조)은 진실미래위가 직원 이메일을 들여다봤다고 주장하며 양승동 사장과 복진선 진실과미래추진단장 등을 고발했다. 이에 KBS는 공영노조 측에서 진미위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불법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 7월31일 공영노조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KBS는 이날 오후 공식 입장을 통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합리적 근거가 없는 이메일 사찰 의혹에 회사 측이 충분한 소명을 했음에도 사전에 적절한 수사협조 요청 없이 강제수사를 하려 한 것은 과잉수사이자 언론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KBS는 영장집행을 시도한 시점도 지적했다. KBS는 “현 시점은 차기 KBS 사장 공모절차가 진행되는 민감한 시기다. 더욱이 오늘은 세계 유수의 공영방송사 수장들이 한 데 모이는 세계공영방송 서울 총회가 KBS 주관으로 시작된 날”이라며 “국위 손상 우려는 물론 공영방송 인사개입 논란을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시도 전날인 23일 KBS 이사회는 서류 심사를 통해 11명의 사장 후보자를 3명으로 압축했다. 오는 27일 시민자문단회의 정책평가회, 31일 KBS 이사회의 최종면접 등 사장선임에 영향을 미칠 일정들이 예정돼있다.

진실미래위도 별도 입장을 내고 “경찰의 압수수색 시도는 공영방송에 대한 폭거”라고 규정하며 “(경찰은) 진상규명에 대한 충분한 협조에도 강제 수사를 택했다”고 주장했다. 진실미래위는 지난 7월 공영노조 고발 이후 9월 말 영등포경찰서에 관계자가 출석해 조사에 응했고, 이달 초에는 앞서 KBS가 공영노조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과 관련해 법원이 인용한 증거보전 신청에 따라 관련 서버 기록을 회사와 공영노조 등 입회하에 추출했다고 밝혔다.

진실미래위는 “추진단은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할 의향이 있다. 공영노조 등 근거 없는 주장이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지길 강하게 원한다”며 “그러나 언론자유 침해와 절차적 흠결이 있는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경찰이 상식과 합리적 근거에 따른 수사 협조를 요구한다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이경호, 새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경찰의 압수수색 시도는 분명한 정치적인 수사”라며 “보수야당, 특정 노조와 한 편을 먹고 KBS 개혁을 훼방 놓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새노조는 “압수수색 나흘 전인 19일 KBS 국정감사에서 보수야당은 진실미래위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집요한 공세를 퍼부었다. 정치공세에 발맞추듯 경찰이 압수수색 카드를 던짐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영등포경찰서 수사관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성창경 공영노조 위원장이었다”며 공영노조를 가리켜 “KBS 개혁에 사사건건 트집 잡고 시대적 요구인 성평등센터 설치마저 ‘사생활 보복 센터’라고 비난하는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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