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정부가 실태조사를 벌여 ‘연착륙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의 균형 잡힌 목소리를 반영키로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동안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해왔던 재계의 우려를 적극 반영해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사실상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23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국민경제자문회의 경제정책회의 결과를 밝혔다.

헌법상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중 경제정책회의는 정부 부처가 걸쳐있는 주요 경제 정책 현안에 대해 민간의 의견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김현철 보좌관은 이날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주재로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2시간 동안 청와대와 정부 부처 인사가 만나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연착륙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인사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이동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등이다.

▲ 지난 10월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혁신추진협의회 제1차 회의에서 김현철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공동위원장인 김부겸 행안부 장관. ⓒ 연합뉴스
▲ 지난 10월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혁신추진협의회 제1차 회의에서 김현철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공동위원장인 김부겸 행안부 장관. ⓒ 연합뉴스
김 보좌관은 “금년 7월 제도가 시행된 이후 산업현장에서 제기되는 여러 우려에 대해서 국민자문회의에서 민간의 의견을 반영, 그런 우려를 전달했는데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장기적으로 삶의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성공적으로 정착되도록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는데 다들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보좌관은 “기업 뿐 아니라 노동자도 감안해야 한다. 기업 측에서 근로시간 활용, 유연성 이런 것들이 반영되고 노동자 측에서 건강권 보호를 마련되도록 조화하는 연착륙 방안을 마련한데 참석자가 공감했고, 향후 정부는 산업 현장 실태조사를 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제도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말했다.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제도는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당정청은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재계에서는 6개월을 유예할 게 아니라 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동계에선 사실상 근로시간 단축 시행 유예라며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에서 기업과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해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나서면서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제도가 후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김 보좌관은 민간 기업들의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아서 대책이 나올 때 설명하겠다”고 답을 피했다.

김 보좌관은 민간 기업들의 의견 청취를 어떻게 들었는지에 대해선 설문조사와 자문회의 직원들의 산업단지 탐방을 통한 현장 목소리, 민간위원들의 독자적인 의견 등을 취합했다고 밝혔다.

실태조사 결과는 오는 11월 중순경 발표하고 제도 개선 방안 대책까지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김 보좌관은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 방안이 주로 산업계의 어려움을 반영해 완화하는데 있느냐’는 질문에 “기업계의 의견도 반영하지만 노동자의 의견도 반영해야 한다”며 “예를 들면 탄력근로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도입하게 되면 임금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균형잡힌 의견을 모아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정청은 이미 한차례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유예’해 놓고 이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은 민간기업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연착륙 방안’이라고 명명한 것도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완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만하다.

지난 6월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제도의 6개월 계도기간을 결정할 당시 정의당은 “정부와 여당은 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믿고, 지난 60년 재벌공화국을 넘어설 근본적 개혁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보완할 방법으로 재량근로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경우 노동계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지난 2016년 기준으로 2052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707시간을 크게 웃돈다. 노동자 삶의 만족도와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고, 이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시행 유예에 이어 정부가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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