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연합뉴스 등 공영언론들의 사내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 정부에서 빚어진 불공정 보도를 바로잡고 인사와 조직을 쇄신하며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다. 내부 개혁과 함께 이들 언론사를 관리하는 공적 기구들도 ‘정상화’에 분주하다.

연합뉴스 대주주 뉴스통신진흥회(진흥회)는 지난 6월7일 한국프레스센터 11층 새 사무실에서 개소식을 했다. 사내 구성원들조차 어디서 진흥회 이사회가 열리는지 알 수 없었던 폐쇄성을 스스로 씻겠다는 취지이기도 했다. 

강기석 진흥회 이사장은 이날 개소식에서 “지난 12년 간 뉴스통신진흥회는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였다. 오늘 진흥회가 정처(正處)를 찾았다”며 “연합뉴스를 관할하는 뉴스통신진흥회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은 프레스센터다. 정처에서 진흥회가 해야 할 일은 연합뉴스가 국가기간뉴스통신사라는 정명에 걸맞은 언론으로 거듭나는 일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새 사무실에서 만난 강 이사장은 “진흥회도 더욱 개방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마찬가지로 연합뉴스 구성원들도 ‘연합뉴스는 나만의 것’이라는 폐쇄적 마인드를 버리고 비판을 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연합뉴스 경영 감독기구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에 선임된 강 이사장은 연합뉴스 경영진에 대해 “속도와 방법에 차이가 있지만 연합뉴스가 사내 개혁을 통해 새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흥회는 연합뉴스 지분 30.77%를 가진 대주주로 연합뉴스 대표이사 추천 권한을 갖고 있다. 진흥회는 지난 3월 조성부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실 주간을 새 사장 후보로 추천했고 조성부 사장은 연합뉴스 개혁을 약속하고 취임했다. 

▲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연합뉴스 기자들이 공정 보도에 문제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사진=김도연 기자
▲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연합뉴스 기자들이 공정 보도에 문제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사진=김도연 기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강 이사장은 1977년 경향신문 공채 17기로 입사했다. 2002년부터 편집국장·대기자로 활동하다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초대 신문유통원장을 지냈다.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이후 보도 행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동아일보 대해부’, ‘조선일보 대해부’ 시리즈를 공동 집필할 만큼 보수언론의 여론 왜곡에 비판적이다. ‘외부인’인 그가 진흥회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연합뉴스 정상화에 기대가 모아졌다.

취임 7개월 조 사장의 인사 가운데 주목할 만한 조치는 ‘책임과 청산’이었다. 연합뉴스는 지난 8월 말 전임 경영진 시절 핵심 보직을 맡은 인사 4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공정보도 훼손 및 회사 명예실추,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이 징계 사유였다. 

과거 불공정 보도에 책임을 물은 것이지만 조치가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강 이사장도 “철저한 반성과 청산이 뒤따라야 하는데 연합뉴스 문화와 조직 인력 구성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본 연합뉴스 정상화는 어디까지 왔을까.

- 지난 18일 진흥회 이사회 겸 연합뉴스 발전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연합뉴스 경영진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정기 이사회가 열린다. 그것만으로 부족한 점이 있었다. 진흥회 이사들도, 우리가 뽑은 연합뉴스 경영진도 연합뉴스에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 진흥회 입장에선 ‘개혁이 늦다’는 평가가 있고 연합뉴스 측에선 잘 나아가고 있는데 지나치게 재촉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있었던 것 같다. 전체가 한 번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속도나 방법에 차이가 있겠지만 개혁을 통해 공영언론 연합뉴스를 새 모습으로 만들어보자는 데에 공감했다.”

- 과거 진흥회는 정치권력의 간섭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데 반해 현 진흥회는 연합뉴스 개혁을 주문한다. 과도한 간섭으로 비쳐질 수 있지 않나. 

“간섭과 개입은 다르다. 연합뉴스와 진흥회 관계가 그렇다. 간섭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개입은 필요하다. 경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보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관리·감독 기구로서 관심과 개입이 필요하다. 연합뉴스 구성원들은 간섭만 하지 않으면 보도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정치권력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보지만 이 문제는 작은 비중이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 그 외 사회 기득권의 간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더러 외부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내부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똑같은 생각과 방식으로 보도했던 사람들이 이미 사회 기득권에 편향돼 있는데, 외부 간섭이 없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까. 나는 기자들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 연합뉴스 보도가 달라졌다고 평가하나.

“연합뉴스가 환골탈태했다고 아직 느낀 적 없다. 예전보다 무리한 기사들은 제거됐다. 환골탈태에 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시간보다 중요한 건 방법이다. 올바르고 좋은 리더십을 정립한 뒤 적재적소 인사를 단행하는 것, 배치된 인사에 대한 교육과 소통이 이뤄지고 다시 인사로 책임과 평가를 묻는 것,  즉 ‘올바른 리더십 정립-공정 인사-교육-소통-책임’이라는 다섯 단계가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 그 선순환을 기대한다.”

- 연합뉴스 어떤 부분에서 “수십 년 동안 똑같은 생각과 방식”, 즉 관행과 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속보에 매몰된 측면이 있다. 속보주의는 경쟁에서 비롯한다. 1보가 숙명인 것처럼, 1보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더라. ‘1보주의’는 수십 년 동안 통신사 전통으로 받아들여졌는데 현 시대에 맞지 않는다. 누구나 속보 쓰는 시대인데 오보 위험을 그리 끌어안을 필요가 있을까. 정부 지원금이 1보 경쟁에서 앞서라고 주는 건 아니지 않나. 김경석 연합뉴스 편집총국장이 ‘연합뉴스는 앞으로 저수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독이 섞인 물을 자꾸 논에다가 앞장서서 내보내려 하지 말고 저수지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2일 서울 프레스센터 뉴스통신진흥회 사무실에서 가진 미디어오늘 인터뷰를 통해 “연합뉴스 기자들이 공정 보도에 문제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사진=김도연 기자
▲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지난 22일 서울 프레스센터 뉴스통신진흥회 사무실에서 가진 미디어오늘 인터뷰를 통해 “연합뉴스 기자들이 공정 보도에 문제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사진=김도연 기자
- 조성부 사장의 인사에 대한 평가는?

“좋은 인사를 위해 ‘넓고 깊은 청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작업이 좁고 약하게 이뤄졌다. 물론 현 경영진이 처한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테면 책임을 묻는 인사에 대한 반발이 강하다고 한다. 또 전체 기자 600여명 가운데 특파원 60명, 지역주재 인력 150명 정도를 제외하면 400명 정도인데 (대규모 인적 청산 시) 당장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염려도 있다.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완벽한 반성과 철저한 청산이었지만 현재 연합뉴스 조직 문화와 인력 구성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한 측면이 있다. 속도가 더디다면 중요한 건 불공정 언론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지난 세미나는 그런 공감대를 확인한 자리였다. 새로 들어선 연합뉴스 리더십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으니 이해하고 기대하며 또 성과가 있길 희망한다.”

- 현실에 타협한 것인가.(웃음)

“연합뉴스 울타리 밖에 있을 땐 무지 비판적이었지.(웃음) 연합뉴스를 보면서 거대 언론이 왜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 프레임에 휘둘릴까 그런 의문이 있었다. 단순히 권력 눈치를 본다고만 생각했는데 관성과 관행에 매몰된 측면이 있다. 구성원들이 ‘권력 간섭만 없으면 잘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건 꺾을 수 없는 내 신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본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되짚어야 할 건 ‘연합뉴스는 나만의 것’이라는 내부 문화 및 구조다.”

- 타 공영언론 개혁 작업을 평가한다면?

“과거 정권이 언론사에 만든 적폐의 크기, 그걸 깨야 한다는 내부 동력 모두에서 차이가 있다. KBS와 MBC에 쌓인 적폐가 연합보다 훨씬 크다. 덩어리가 더 크다. 연합뉴스에선 대량 해고 사태나 외부 인력의 대거 투입 등은 없었다. MBC의 경우 적폐를 청산하려는 내부 힘이 강하다. 그에 반해 연합뉴스에선 공정언론, 자유언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다.”

- 연합뉴스 구성원들에게 하고픈 말은?

“언론사 본질은 보도다. 무엇보다 기자들 스스로 언론관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연합 조직원으로서 연합뉴스가 ‘연합뉴스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다. 공공 자산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자기 조직에 대한 자긍심은 좋지만 폐쇄성은 지양해야 한다. 사영 언론보다 더 언론과 시민단체 비판에 민감해야 한다. 비판이든 격려든 진흥회도 관심을 갖고 경청하고 소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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