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신 독재에 맞서다 해고된 동아일보 언론인들이 결성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제30회 ‘안종필 자유언론상’ 특별상을 박진수 전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에게 수여했다. 심사위원단 만장일치였다. 

안종필 전 제2대 동아투위원장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자유언론실천 운동에 헌신하다가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198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시상식은 오는 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박진수 전 지부장은 올해 초 ‘최남수 사장 반대 파업’을 이끌었다. 노사 합의 파기 등으로 최남수 전 사장이 지난 10년의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노조는 지난 2월 파업에 돌입했고 YTN 구성원들이 직접 투표로 지난 5월 최 전 사장 사퇴를 받아냈다. 방송사에서 구성원 투표로 사장이 퇴진한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10년 투쟁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10년 전인 2008년 10월 YTN 기자 6명이 해고됐다. MB 대선 캠프 방송특보 출신 사장에 반대했던 그들이 제자리 찾기까지 꼬박 10년 걸렸다. 정찬형 신임 YTN 사장이 지난 1일 해직기자 출신 우장균·조승호 기자를 각각 경영본부장, 보도혁신본부장에 임명하며 YTN 정상화에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 박진수 전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 박진수 전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 전 지부장은 안종필 특별상 수상에 “개인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보수정권의 YTN 장악에 맞섰던 지난 10년 투쟁을 끝맺음한 데 대한 격려”라고 소회를 밝혔다. 박 전 지부장은 “10년 동안 투쟁하면서 두려웠던 건 상식이 패배했을 때의 자괴감, 패배 뒤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며 “우리가 믿었던 상식이 잘못된 게 아니란 걸 확인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MB정부의 방송 장악 이전까지 그는 유능한 촬영 기자였다. 1996년 YTN에 입사해 사내 특종상(6회), 우수프로그램상(4회), 이달의 카메라기자상(1회) 등을 통해 실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YTN 공정방송 투쟁에 나서면서 정직만 3번 받는 등 사측한텐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로 간주됐다. 불공정 방송에 타협하지 않은 대가였다.

박 전 지부장은 인터뷰 내내 ‘상식’을 강조했다. “일각에서 YTN 노조가 강성이라는데 우리가 2008년 거리로 나왔을 때 율동이나 노래패조차 없었고 집회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다. 모든 게 어설펐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았던 건 공정방송 투쟁이 상식을 지키려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008년 이후 주로 YTN 노조 간부로 활동했다. 대량 해직 사태가 빚어진 2008년 노조 조직쟁의부장을 맡은 뒤 부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위원장까지 지내며 공정방송 투쟁 선두에 섰다. 

집회나 투쟁 현장에서 가장 목소리가 컸던, ‘돌격대장’을 자처한 그도 지난 10년은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최 전 사장이 중간 투표에서 신임을 받았다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회사를 떠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박 전 지부장은 “YTN 정상화가 불가능한 상황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며 “최남수 불신임 투표에서 진다는 것은 곧 상식이 사그라드는 것과 같았다.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절망에서 한줄기 빛을 본 듯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했다.

▲ 박진수 전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이 지난해 4월14일 오후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앞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YTN 해직기자들의 투쟁과 동료들의 연대를 담은 사진집 ‘삼천일’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YTN지부
▲ 박진수 전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장이 지난해 4월14일 오후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앞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YTN 해직기자들의 투쟁과 동료들의 연대를 담은 사진집 ‘삼천일’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YTN지부

그는 YTN 투쟁에 연대해준 동료 KBS·MBC 언론인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특히 지난 4월 최 전 사장의 청와대 오찬에 항의집회를 하던 중 양승동 KBS 사장이 박 전 지부장을 직접 찾아 두 손을 잡고 “YTN 어떡하느냐. 못 도와줘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양승동 사장도 2008년 MB 정권의 정연주 전 KBS 사장 강제해임에 맞서 KBS 기자·PD들이 조직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사원행동’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공정방송 투쟁의 앞에 있었다. 박 전 지부장은 “양승동 사장 손을 잡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그만큼 당시 서럽고 외로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력의 방송 장악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박 전 지부장은 ‘노동이사제’를 주장했다. 그는 “YTN은 주식회사라는 점에서 공영방송 KBS, MBC와 또 다르다”며 “대표이사와 대주주 결심만 확고하다면 노동이사제 도입도 가능하다. 사내 구성원 의견을 대변할 이사들이 YTN 이사진에 들어가야 한다. 방통위도 이 부분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과 시청자, 구성원 의견이 고루 반영되는 사장 선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찬형 사장에겐 “시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인사”라며 “과거 사장들은 시청자 목소리를 외면했는데, 지금은 시청자 중심의 보도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제대로 된 방송을 위해선 제대로 된 사람들이 뉴스 의사 결정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위한 인사가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사내 개혁을 통한 화합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조위원장을 마치고 휴식을 가진 그는 이제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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