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에서 회사를 비판했다가 거센 내부 반발에 직면한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이번 갈등은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로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박준동 위원장은 통일부가 지난 15일 ‘탈북민 출신’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불허한 데 대해 회사와 기자들 입장과 다른 노보를 내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남북회담 취재에 탈북민 출신 기자를 보내는 것이 협상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선일보 책임을 지적했다가 자사 기자들에게 ‘노보 사유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노보 발행 이후 노조 소속 정치부 기자들이 “노보가 대다수 조합원들의 ‘민심’이 아닌 특정인의 정치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하는 등 조합원 여론이 악화하자 박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책임질 것을 계속 요구한다면 탄핵 또는 불신임 투표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노조 대의원들은 지난 22일 불신임 투표 진행 여부를 놓고 조합원 총의를 모았고 그 결과 탄핵이나 불신임 투표 없이 내달 1일 선거 공고를 한 뒤 예정대로 노조위원장 선거를 치르기로 정리했다. 1988년 조선일보 노조 출범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박 위원장은 조만간 두 번째 임기 1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또한 노조 대의원들은 박 위원장에게 ‘노보 사유화’ 책임을 물어 노보 제작에 관여하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의 입장 표명을 하기로 했다. 내달 1일 발행하는 노보는 박 위원장이 아닌 대의원회와 부위원장 주관 하에 제작된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앞서 조선일보 전임 노조위원장들은 긴급 토론을 갖고 “박 위원장의 불과 한 달여 남짓 남은 임기를 고려하건대 박 위원장이 조기 사퇴하고 차기 집행부를 서둘러 꾸리는 게 조직 안정을 위해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불신임 투표가 좌초된 데엔 조선일보 노조 대의원들의 정치적 판단도 작용했을 걸로 보인다. ‘노보 사유화’라는 명분이 있지만 자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박 위원장을 불신임하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낙선하더라도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지난 1일 발행한 조선노보. 그는 노보에서 조선일보 사주의 언론 사유화와 세습 문제를 직격했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지난 1일 발행한 조선노보. 그는 노보에서 조선일보 사주의 언론 사유화와 세습 문제를 직격했다.
이번 사태는 표면적으로 통일부의 취재 불허 사태 관련 노보로 빚어진 노조위원장과 조합원 간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박 위원장이 발행하는 노보는 ‘사내 골칫거리’였다.

박 위원장은 노보를 통해 △처우가 열악한 사내 비정규직과 연대 호소 △임직원 임금 상승에 비해 과도한 사주 배당금 문제 비판 △언론사 세습 문제 지적 △노동 시간 단축 필요성 강조 △회사의 노조 교섭 불성실 비판 △‘뇌물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자사 옹호 보도 비판 등 자신의 소신을 피력해왔다. 조선일보 경영진은 물론 동료 기자들이 불편할 수 있는 글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노보를 낼 때마다 조선일보 논조와 다른 관점이 언론계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기자들 사이에선 “박 위원장 개인 생각이 노보에 지나치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기자들로 구성된 조선일보 노조 조합원 수는 20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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