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정부가 조선일보를 동원해 한국은행 금리인하를 압박했다는 정황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1일 KBS 단독보도로 알려진 이 같은 정황은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도 쟁점이 됐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2월과 3월 당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정 부위원장은 안 수석에게 “강효상 선배와 논의했습니다. 기획기사로 세게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자료 이진석에게 이미 넘겼습니다”, “형님 조선이 약속대로 세게 도와줬으니 한은이 금리 50bp(0.5%P) 내리도록 서별관회의 열어서 말씀하셔야 합니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

▲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사진=KBS 뉴스9 리포트
▲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사진=KBS 뉴스9 리포트
실제 한은은 조선일보 보도 이후인 2015년 3월12일 기준금리를 1.75%로 0.25%P 인하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 부양을 뒷받침하는 조처였다. 시기적으로 조선일보 보도 이후 금리인하가 이뤄졌다는 점과 정 부위원장과 조선일보의 사전 조율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가 공개됐다는 점 등에 비춰 ‘박근혜 정부-조선일보-한국은행’ 간 금리인하 3각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한은 출입기자이자 경제부 차장으로 2015년 3월2일과 3일 ‘우물 안의 韓銀’이라는 기획 꼭지를 싣고 금리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이는 이진석 기자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획기사에서 “세계 중앙은행들은 불황을 막으려고 금리를 내리고 돈 풀기 전쟁”에 나섰는데 “한국은행만 과거 정책에 얽매”이고 있다며 금리인하 필요성을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사설을 통해서도 “한국은행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처럼 고용 확대를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 조선일보 2015년 3월2일자 1면.
▲ 조선일보 2015년 3월2일자 1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진석 조선일보 기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세간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이미 그 당시 경기 후퇴 국면이었고 한은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며 “2014년 10월 관련 칼럼을 썼다. 2015년 6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칼럼을 쓴 적 있다. 해당 칼럼들을 보면 내 입장이 명확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논조는 계속 유지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 기자는 2014년 10월11일자 ‘韓銀은 뭐 하고 있나’라는 제목의 데스크 칼럼을 통해 “한은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커져간다. 정부는 경기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중이다. 지난 8일에도 연내 5조원 이상을 더 풀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은은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에 난색을 보인다. 경제정책의 한 축인 통화정책을 담당하면서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썼다.

보도 이후인 그해 10월15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는데 이 기자는 “이때도 내 칼럼 때문에 내린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기자는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이 안종범 수석에 보낸) 문자 메시지 보도 내용을 봤는데, 자료를 언급한 대목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당시 기획보도(‘우물 안의 韓銀’)를 보면 알겠지만 어디서 자료를 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후배·동료 기자들의 전수 조사 및 취재를 바탕으로 실린 보도였다.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금리인하 추세라는 건 통계를 통해 확인되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2014년 10월11일자 데스크 칼럼.
▲ 조선일보 2014년 10월11일자 데스크 칼럼.

이 기자는 또한 “당시 차장이었다. 그 위에는 수석 차장, 부장, 국장이 있다”며 “국장이나 사장에게 직접 지시 받지 않는다. (강효상 국장을 언급한) 문자 내용이 어떤 취지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던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KBS 보도를 공유한 뒤 “요즘 정부·여당이 급하긴 급했나 보다. 껄끄러운 야당 의원에 대해 친여 매체(KBS)를 통해 이런 식으로 가짜 프레임 공격을 해온다. 할 말은 하는 조선일보도 눈엣가시인가 보다”라며 KBS 보도를 정부의 ‘프레임’으로 규정했다.

강효상 의원은 “KBS는 그럴지 몰라도 조선일보는 누구 부탁 받아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그런 언론이 아니”라며 “한국은행이 조선일보 보도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기관인가. 조선일보를 너무 과대 평가하는 것 아닌가. 이런다고 문재인 정부 실정이 가려지느냐. 국민 세금 같은 시청료를 받아 전파 낭비하는 공영방송이나 언론·야당 공격에 몰두하는 여당이나 참 한심한 세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주열 한은 총재는 22일 국회 국감에서 “당시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정도로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려웠다”며 기준금리 인하는 당연한 추세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압박 받은 적 없다”며 “정부가 압박한다고 해서 금통위가 따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 관련기사 : 박근혜정부, 조선일보 청탁 통해 한은 압박 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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