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와 피의자 신상은 공개하지 않는다.’ 인권보도준칙 가운데 인격권 조항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PC방 살인사건 용의자 얼굴과 이름을 언급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인권보도준칙’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인권보도준칙을 중심으로 한 보도 모니터 결과를 발표했다. 2011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동으로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했다. 기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또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치우쳐 인권 침해 보도를 하는 것에 주의하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 준칙은 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임지수 언론인권센터 모니터 요원은 언론의 ‘CCTV 보도’가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7월1~21일까지 MBC뉴스데스크 모니터 결과 11건의 범죄 및 사건사고 보도에서 CCTV영상이 사용됐다. 

▲ 지난 7월4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왔다.
▲ 지난 7월4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는 장면이 방송에 나왔다.

이 가운데 응급실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의 경우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고 의자를 발로 차는 등 상세한 장면이 여과 없이 나왔고, 코뼈가 부러진 피해자 모습에는 모자이크 처리를 한 채 내보냈다. 이날 모니터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TV조선은 자살 장면이 담긴 CCTV를 반복적으로 내보내 심의제재를 받은 일도 있다.

임지수 요원은 이런 보도가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사건의 배경을 짚는 심층보도가 아닌 사건 자체에 대한 자극적이고 선정적 보도로 이어지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보도에서) 그림이 되느냐 여부가 중시된다. 인격권에 대한 고려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며 “선정성, 충격적 이미지와 단편 사실이 본질이 되는 주객전도가 이뤄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책으로 CCTV 영상 보도에 있어 △이미지 사용에서의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선정적 보도에 대한 세세하고 일관된 기준을 정립하고 △인권침해 여부를 우선 고려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BBC 제작 가이드라인에는 △수위 높은 이미지를 사용할 때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단지 입수되었다는 이유로 폭력장면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사망 장면은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영상의 사용 전에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여성을 다룬 보도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정진호 모니터 요원은 뉴스보도가 여성을 다룰 때 △남성중심적 가치에 입각해 실제 중요성이 비해 의미를 낮춰 보도하고 △여성이라는 성별을 강조해 피상적인 단순 화젯거리로 보도하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 1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언론인권센터 포럼.
▲ 지난 19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언론인권센터 포럼.

JTBC 뉴스룸이 9월14일 보도한 “촬영 전부터 악플, 평점 전쟁...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포트의 경우 “여배우를 비난하는 댓글과 응원하는 댓글이 엇갈려 남녀간 성 대결의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라는 표현이 직업 앞에 성별을 붙인 점과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가치관의 차이처럼 표현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8월17일 MBC 뉴스데스크의 “‘번식계획 없냐’... 교감이 교사들에게 언어폭력”리포트는 여성을 ‘몸매’ ‘다리’ ‘공장문’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성폭력’이 아닌 ‘언어폭력’이라는 용어를 써 폭력성을 희석시킨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 북한 인사를 다룬 보도에서도 ‘성별’ 그 자체를 부각하는 내용이 많았다. 6월12일  MBC 뉴스데스크 “김여정, 최선희, 현송월, 김성혜... 곳곳에서 북 여성 맹활약”리포트가 대표적이다. 이 보도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인사들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에만 주목해 리포트를 만들었고 “김여정 부부장이 오빠를 밀착 보좌했다”등 성별을 강조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반면 같은 주제를 다룬 4월28일 KBS 뉴스9의 “김정은 그림자 수행 김여정, 실세 입증” 보도는 성별에 대한 언급이 없고, 김여정 부부장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중심으로 보도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강은 모니터요원은 노인을 다룬 보도가 △별개의 토픽을 이슈화하기 위해 노인 문제 수단화 △노인 문제 자극적 소비 △고령화 문제를 경제적 측면에서 부각 △노인은 수동적, 의존적 존재라는 사회적 편견 강화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MBC 전지적참견시점 논란을 비롯해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프로그램들에는 공통적으로 인권 이슈가 있다. 앞으로는 누가 더 인권감수성이 높고 인권친화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가 그 언론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뉴욕타임스에 젠더 에디터가 있는데, 유사한 개념으로 언론사에 인권에디터가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사는 신뢰도 조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경쟁적으로 참여하는데, 심의제재 내역과 모니터 내역 등을 종합해 인권지수 조사를 만들어 결과를 발표하면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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