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이 공개돼 파문이 예상된다.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청와대가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한 정황이 담겨 있는 안종범 전 경제수석 문자 메시지를 단독 입수·보도했다.

지난 2015년 3월 한국은행은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대로 인하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금리인하 직전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이 문제를 사전 논의한 사실이 안 수석 휴대전화에 남아 있었다.

2015년 2월 정 부위원장은 안 수석에게 “강효상 선배와 논의했다”면서 “기획 기사로 세게 도와주기로 했고 관련 자료를 이모씨에게 이미 넘겼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사진=KBS 뉴스9 리포트
▲ KBS ‘뉴스9’은 21일 오후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사진=KBS 뉴스9 리포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다. KBS가 언급한 이모씨는 조선일보 경제부 차장급 기자였다. KBS는 “조선일보는 이 기자 이름으로 2015년 3월2일과 3일에 걸쳐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연속 기사를 내보냈다”고 보도했다.

실제 2015년 3월2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에 ‘우물 안의 韓銀’이라는 기획 꼭지가 실렸다. 첫 번째 기획 기사 제목은 “경기부양 팔짱낀 韓銀의 ‘시대착오’”로 이진석 기자가 썼다. 이 기자는 이 보도에서 “한국은행은 어려운 국내 경기 상황과 0%대 저물가에도 선제적인 대응은 고사하고 번번이 시기를 놓쳐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불황을 막으려고 금리를 내리고 돈 풀기 전쟁”에 나섰는데 “한국은행만 과거 정책에 얽매”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다음날인 3월3일에도 이진석 기자 바이라인으로 “‘3低 수렁’ 빠진 경제, 韓銀이 끌어올려야”라는 기사가 1면 하단에 실렸다. 이 기자는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재정 절벽에 내몰린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양적완화(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를 시행했던 것처럼 한은이 경기 회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고 해설했다.

▲ 조선일보 2015년 3월2일자 1면.
▲ 조선일보 2015년 3월2일자 1면.
같은 날 조선일보 사설은 “한국은행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처럼 고용 확대를 위해 중앙은행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KBS 보도를 보면 기사가 나가자마자 정 부위원장은 “조선이 약속대로 세게 도와줬으니 한은이 금리를 50bp, 즉 0.5%P 내리도록 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안 수석에게 다시 보냈다. 한은은 같은 달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0.25%P 내렸다. 3달 뒤 0.25%P를 더 낮췄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BS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이 여러 경제 주체 의견을 수렴한 것이 아니라 특정 세력, 정권 실세 외압에 영향을 받았다면 한은 독립성이 훼손된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강 의원은 정부 측으로부터 기사 청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으며 정상적 절차를 거쳐 기사가 작성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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