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정규직화를 향한 ‘채용비리’ 규정은 악의적이다. 보수언론들은 비율 하나만 가지고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과대 해석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처럼, 확인된 부정청탁 정황도 없다. 유일한 근거는 ‘소문’이다. 익명의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노조가 가족에게 ‘지금 무기직으로 들어와야 정규직된다’고 독려했단 소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용세습’ 규정도 마찬가지다. 세습을 문제 삼으려면 출발선이 불공정해야 한다. 보수언론은 ‘비정규직들이 공채와 달리 필기시험을 안봤다’는 이유만 댔다. 보수언론은 정규직 전환된 1285명 중 8.5%인 108명이 친·인척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공채 출신’ 정규직 1만4천여명만 따졌을 때 친·인척 비율은 12.8%(1800여명) 가량이다. 정규직화 후 비율은 11.2%로 줄었다. 숫자만 가지고 고용세습을 논할 수 있을까.

▲ 조선일보, 중앙일보 18~19일 간 주요 기사 및 사설 헤드라인.
▲ 조선일보, 중앙일보 18~19일 간 주요 기사 및 사설 헤드라인.

8.5%도 부풀려졌다. 친·인척 108명 중 34명은 구의역 참사 이전부터 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은 20~40년 운영됐다. 공사 관계자는 “같은 공사든, 원·하청 간이든 친·인척 관계인 직원들을 종종 봤다”고 말했다. 보수언론이 특정한 ‘채용비리’ 대상은 최대 74명, 약 5.8%로 줄어든다.

5.8%가 상대적으로 높을 순 있다. 보수언론은 이를 가족을 독려한 ‘노조 때문’이라고 했다. 74명은 모두 제한경쟁과 공개경쟁을 거쳤다. 제한경쟁엔 변호사·노무사 등 외부전문가 5명이 함께 심사했다. 최종 선택은 인사권자 서울교통공사가 한다. 선택과정에 노조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보수언론은 공사가 노조의 친·인척에게 일부러 혜택을 줬다는 셈인데, 근거가 없다. 노조가 “감사·수사로 밝혀라”고 목소리 높이는 이유다.

세습이란 단어도 낯 뜨겁다. 보수언론은 정규직 전환된 이들을 귀족노동자처럼 그렸다. 하청업체에서 25년 일한 한 직원은 1년차 ‘공채 정규직’보다 임금이 낮다.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전동차 경정비 기사 등도 4~5년씩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공채 정규직은 4조 2교대 근무하지만 이들은 아직 3조2교대로 일한다. 초봉은 3300만원 선이다. 이마저도 공사와 소수 정규직 노조의 반발때문에 겨우 이뤄낸 처우다.

보수언론은 필기시험이 없었다는 걸 노조의 이기주의로 그렸다. 길게는 25년동안 한 자리에서 일한 직원들의 고용형태만 바꾸는데 필기시험을 거쳐야 할 이유는 뭘까. 이용사, 식당·세탁소 직원 등 OMR 카드를 본 적도 없는 고령 노동자도 많았다. 일자리가 있어 1200여 명이 일했는데 고용 형태가 바뀐다는 이유로 시험을 다시 보는 건 노동존중에 반한다. 기술자격 문제는 이미 채용 심사단 판단을 거쳤다.

누군가는 분명 ‘지원하라’고 가족을 독려했을 것이다. 이 말은 얼마나 부도덕할까. 한국은 임금노동자 1천963만명 가운데 874만명(44.5%·2016년 11월)이 비정규직인 사회다.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독려하는 게 강원랜드 채용비리와 맞먹을 만큼 질타받을 일인지 의문이다. 개인적 독려와 부정행위는 다르다.

친인척 비율 8.5%는 노조 이기주의로 탈바꿈됐다. 이기주의는 고용세습으로, 고용세습은 채용비리로 기정사실화됐다. 정규직화를 추진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정부는 ‘이를 비호한 세력’이 됐다. 마지막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비난으로 끝났다. 보수언론은 이번 보도로 노동조합,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 가치를 한꺼번에 비난할 수 있었다. 결국 이들이 진짜 원했던 건 이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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