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박준동)이 ‘계엄 문건’ 보도에 소극적인 자사를 비판했다. 노조는 지난 16일자 노보에서 공정보도 활동 일환으로, 지난 7월 작성한 ‘공정보도 발제문’을 게시했다.

지난해 초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에 박근혜 탄핵심판 기각 시 전국에 무장 병력과 군 장비를 배치, 계엄을 선포하고 국가를 장악한다는 계획이 담겨 큰 파문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고 질타한 바 있다.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8일 기무사 계엄 문건 관여 의혹과 관련해 장시간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 조선일보 지난 7월11일자 사설.
▲ 조선일보 지난 7월1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계엄 문건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폈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11일자 사설에서 기무사 문건을 “탄핵 심판 직전 상황에서 그야말로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을 검토한 것”이라며 “헌재 결정에 분노한 쪽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문건에서 언급한 대로 정부 종합청사, 국회, 대법원, 한국은행, 국정원 등이 점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그 상황에서 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두둔했다.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지난 7월18일자 칼럼에서 “경찰력으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군을 동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자 의무다.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비해 군이 필요한 준비사항을 검토해 놓은 것이 계엄령 문건이다. 문건에 줄을 쳐가며 읽어봐도 국가 전복음모가 어디 숨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고 썼다.

그러나 조선일보 노조는 자사 보도·사설들을 두고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은 언론사 검열을 획책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는 내용이었는데 본지는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며 정당화했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면서 누구를 위해 질서유지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노조가 지난 7월 박두식 편집국장과 양상훈 주필에게 보냈던 ‘계엄 문건 공정보도 발제문’을 보면, 노조는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하고 공작을 벌여 적대 여론을 조성한 것은 군 정보기관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월권이고 불법 행위”라며 “왜 본지는 이 사실이 알려진 지 열흘이 지나서야 보도할 정도로 소극적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군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가가 보듬어야할 유족을 적에게 하듯이 공격했는데 뉴스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기무사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계획까지 짰다. 국정농단을 처음 고발해 국민적 저항을 촉발한 언론으로서 조선일보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기무사와 관련해 늦게나마 나온 사설은 기무사 문건을 정당화하는 논리였다”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아래는 노조가 지난 16일자 조선노보에 실은 ‘계엄 문건 공정보도 발제문’ 문건 내용 전문.

군화에 짓밟혔던 언론자유를 잊은 건지요?

‘계엄 문건’공정보도 발제문

기무사 요원들이 조선일보에 출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문을 찍기 전 교정용 인쇄물을 당시엔 군인들에게도 검사 받았습니다. 빨간펜을 휘갈겼던 군인들과의 마찰은 무용담처럼 전해지지만 굴욕적이고 참담한 언론 역사입니다. 군부 쿠데타를 주도했던 기무사가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등장해 기억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하고 공작을 벌여 적대 여론을 조성한 것은 군 정보기관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월권이고 불법 행위입니다. 왜 본지는 이 사실이 알려진 지 열흘이 지나서야 보도할 정도로 소극적인지 의문입니다. 군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가가 보듬어야 할 유족을 적에게 하듯이 공격했는데 뉴스 가치가 없는 것인지요?

게다가 기무사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계획까지 짰습니다. 국정농단을 처음 고발해 국민적 저항을 촉발한 언론으로서 조선일보가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무사와 관련해 늦게나마 나온 사설은 기무사 문건을 정당화하는 논리였습니다. 혼란에 대한 대비였다는 것입니다. 군의 개입 명분은 늘 ‘혼란’이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질서와 독재자의 탄생이었습니다. 5·16도 5·17도 그랬습니다.

혼란을 자초한 국가체제는 군이 아닌 국민의 직접적 정치 행위로 새로 재편되는 게 정의입니다. 4·19 혁명 당시 국민의 저항과 경찰의 무력진압 속에 혼란은 있었지만 군은 개입하지 않았고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헌정질서가 수립됐습니다.

이번엔 헌재가 국민의 뜻에 맞게 판결했기 때문에 혼란이 끝난 것입니다. 탄핵이 국민의 뜻을 거스른 것이었다면 탄핵반대 세력의 저항 또한 지속됐을 것입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폭동을 일으켜도 동력을 상실할 것이고 경찰력으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못 막을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저항을 군이 진압할 명분은 없습니다. 헌법 전문처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헌재의 판결이 제도적 정치적 해결의 끝이 아닙니다. 혼란을 끝내기 위한 조기 선거나 국민 투표도 있습니다. 군은 법률에 따라 긴급상황에 대응 방안을 짠 것이라고 하지만 여러모로 정당성이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지난 16일 발행한 조선노보.
▲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지난 16일 발행한 조선노보.
우선 대통령 권한인 군 동원을 국방부 자체적으로 계획했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용에서도 민주 질서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48명의 보도 검열단을 통한 언론 통제를 계획한 것입니다.

위수령에 대해서는 국회의 통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계략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위수령 자체가 위헌성 있는 대통령령인데, 국회가 법률로 제지할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2개월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방안까지 짰습니다. 이런 발상이라면 계엄의 유일한 통제 장치인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권’도 어떻게든 무력화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계엄을 규정한 헌법과 법률에는 독재시대의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그에 근거해 이런 반민주적 시도가 죄책감 없이 획책된 셈입니다. 

헌법 77조는 계엄을 통해 군이 사법부 행정부를 보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백보 양보해 혼란을 막기 위해 군이 출동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헌정질서를 지키는 게 목적이어야지 이처럼 파괴할 근거를 줘선 안 됩니다. 상위 조항을 무력화하는 하위 조항이 존재한다면 위선적인 헌법일 뿐입니다.

이런 헌법이 그대로인 한 쿠데타 위험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선 언제든 군부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헌법에 길을 열어놓은 셈입니다. 때문에 국민 주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이런 반민주적 조항을 개선하는 데 개헌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방법은 국민이 원하면 소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국회와 헌재의 결정을 조바심 내며 지켜보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천안문 사태처럼 탱크가 밀고 오면 몸으로 막아야 하나 걱정하는 것도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이 문건이 계엄에 대한 검토일 뿐이고 실행안은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검토는 실행 가능성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언론에 대한 검열 인원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한 문건을 언론이 대수롭지 않게 볼 수는 없습니다. 문건이 드러난 배경에 대해 음모론도 있으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문제에선 정파의 이해를 따질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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