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방위 국정감사는 ‘보이콧으로 끝난다’는 공식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했다. 지난 1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 도중 과방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여당이 ‘드루킹’ 증인 채택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며 “더 이상 들러리 서기 싫다”(정용기 한국당 간사)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떠났다.

여느 때처럼 ‘파행’이라 표현하기엔 다소 어색하다. 한국당 의원들이 자리를 뜬 시각은 오후 7시경, 국감이 개의한 지 이미 9시간 가까이 지나서였다. 어느 정도 할 말은 다 하고 일어났다고 보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실제 이날 일부 한국당 의원은 2차 질의에 이어 참고인에게 추가질의까지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날 국정감사 피감기관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코바코)와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였다. 이른바 ‘문재인 정부 방송 장악’ 구호를 반복해 온 한국당 입장에서도 그냥 넘겨선 안 될 날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당 의원들 화력은 엉뚱한 곳을 향했다. 수 시간 동안 ‘올해 MBC 시무식에 태극기를 걸었느냐’를 따지다 퇴장한 것. 윤상직 의원은 김상균 방문진 이사장에게 “MBC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냐, 대한민국 공영방송이냐”를 묻더니 “올해 MBC 시무식에 태극기가 없다. 심각하지 않냐”고 주장했다.

▲ 18일 방송문화진흥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를 대상으로 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퇴장하고 있다.
▲ 18일 방송문화진흥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를 대상으로 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무의미한 ‘태극기’ 공방, 검증 없이 ‘던지고 보는’ 질의

사실관계부터 따지면 MBC는 시무식에 태극기를 게양할 의무가 없다. 대한민국국기법상 국기를 게양해야 하는 행사가 아닐뿐더러, 국민의례에 관한 규정 상 공식행사를 개최할 때 국민의례를 먼저 실시해야 하는 중앙행정기관은 대통령 소속기관 및 국무총리 소속기관을 포함한 부·처·청이다. 한국당 의원들 스스로도 시무식에 태극기를 반드시 게재해야 할 근거는 대지 않았다.

올해 처음 시무식에서 태극기가 사라졌다는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순임 MBC공정방송노동조합(공정노조) 위원장이 “30년 이상 MBC에 근무하면서 공식적인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 없다. 올해는 ‘(사장) 비서실에서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공방은 과방위 여당 간사인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MBC 사측이 앞서 이 위원장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했다며 해당 메시지 내용을 공개한 뒤에야 끝났다. “2015, 2016, 2017년 시무식에도 태극기를 걸지 않았으며 애국가 역시 부르지 않았다. 2011~2018년 시무식에서는 사가(社歌) 제창만 했다”는 내용이었다.

출처나 근거를 알 수 없는 주장을 무책임하게 던지기도 했다. 질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과방위 한국당 간사인 정용기 의원은 “전달된 첩보에 의하면 MBC 방문에 맞춰 MBC 노조에서 피켓시위를 넘어 달걀 투척을 준비하고 있다. MBC에 자체 경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박대출 의원, 김성태 의원, 최연혜 의원 등은 MBC가 전임 경영진 시절 파업 불참자를 잘라내려 한다며 이른바 ‘하반기 100명 퇴출설’을 거듭 제기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애초 해당 주장은 지난달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한 전임 MBC 경영진 출신 최기화 이사가 “조직 개편으로 파업에 불참한 사람 100여 명 명예퇴직을 강요한다더라”고 주장한 데서 시작됐다.

▲ 18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허욱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부위원장,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기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 18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허욱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부위원장,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기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기-승-전-사퇴하세요’…과방위에서 통일부장관 사퇴 요구?

현 경영진의 ‘경영 실패’를 주장하는 대목도 삐걱거렸다. MBC 올해 적자가 1천억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여러 차례 알려졌다. 지난 12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경영진은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MBC 구성원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주겠다’며 제작비 투자를 증액한 경영진 방침을 이어가도 되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그럼에도 미디어 환경변화로 인한 지상파 광고수익 급감과 전임 경영진의 대응책 미비, 연이은 대규모 스포츠 행사 등 한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교한 질의보다는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정용기 의원은 “최승호 사장의 경영무능에 대해 얘기하겠다”더니 근거로 “MBC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나 퇴사한 사람 10명에게 물었다. 대부분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더라”는 전언을 말했다. 참고인들에게 최승호 사장의 경영능력을 어떻게 보느냐는 인상비평성 질문도 연이어 던졌다. 질의 대부분은 ‘최승호 사장을 사퇴시켜야 하지 않느냐’로 귀결됐다. 김성태 의원은 최승호 사장과 방문진 이사진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과방위 국감에서 통일부장관 사퇴를 요구한 의원도 있었다. 박대출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균 방문진 이사장, 김기만 코바코 사장, 허욱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당신이) 통일부장관이라면 남북고위급 회담에 새터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풀단 기자를 배제시키겠냐”고 물었다. 이후 박 의원은 “북한 심기를 살피며 ‘심기 경호대장’ 노릇하는 통일부장관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버럭 국감’… 참고인 ‘윽박지르기’도

참고인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소모전으로 치달았다. 이날 참고인으로는 이순임 공정노조위원장과 전 MBC노동조합 위원장인 김세의 전 기자, 송요훈 MBC정상화위원회(정상화위) 조사1실 국장이 출석했다. 상대적으로 현 경영진에 비판적인 소수 노조 전·현직 위원장과, 과거 청산 기구의 실무진이 한 자리에 섰다. 

MBC 내부에는 약 1300명 조합원이 소속된 1노조인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결성된 50여 명의 MBC노동조합(MBC노조), 간부급 위주로 조합원 10여 명의 MBC공정노동조합 등 3개 노조가 있다.

이날 이른바 ‘시무식 태극기’ 논란을 비롯해 참고인 가운데 가장 많은 질의를 받은 이순임 MBC공정노조 위원장은 사실과 일부 다른 답변들로 비판을 샀다. 과거 ‘PD수첩’ 광우병 편 PD가 최승호 현 사장이었다는 주장 등이다.

이에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참고인들에 대한 ‘위증’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고인이라고 해 거짓 진술을 할 자격은 없다”며 “세 분 참고인들에게 증인선서를 할 기회를 주면 어떻겠나. 위증 벌을 각오하면서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일부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은 참고인이 증인과 달리 증언이나 감정, 진술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참고인으로 출석했을 경우에도 증인 선서를 한 뒤 증인으로서 신문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응낙해야 한다. 이날 참고인 가운데 증인선서 의사를 밝힌 참고인은 송요훈 국장 뿐이었다. 김세의 전 기자는 참고인 발언을 거짓으로 몰아간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참고인이 증인선서를 거부한 이상 의원은 적절한 질의를 통해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정작 이종걸 의원은 국감 주제와 관련성이 낮은 질의에 시간을 소모했다. 김 전 기자가 대표로 있는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 방북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방송했다며 거듭 비판한 것이다. 이 질의는 김 전 기자가 거짓말쟁이라는 주장만 남았을 뿐이다.

▲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
▲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질의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날 모든 의원들이 소모적인 공방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다. △전임 경영진의 정치인 추천 경력기자 채용 질의 및 MBC 편성위원회 및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촉구(박선숙 바른미래당), △MBC의 UHD 투자 미이행 및 방문진 산학협력사업 문제(변재일 민주당), △MBC의 정수장학회 출연금 타당성(신용현 바른미래당), △지역MBC 광고 판매 수익 불균형(이상민 민주당)을 비롯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질만한 이슈를 던진 의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 시간 불필요한 문제제기와 이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면서 정책 이슈 질의는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했고, 한국당 막판 퇴장으로 결국 과방위는 ‘파행 국감’, ‘보이콧’이라는 결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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