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7일자) 여러 조간신문이 20년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범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이 자국법에 따라 스리랑카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1998년 10월17일 구마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숨진 대구 여대생 정아무개씨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이 자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하지 못했는데 “스리랑카 현지법으로는 공소시효가 남았다”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스리랑카 검찰이 최근 그를 기소했다. 스리랑카 법으로도 공소시효를 딱 4일 남겨 두고 기소했다.

▲ 왼쪽 위에서부터 17일자 조선일보 12면, 경향신문 1면, 한국일보 10면, 동아일보 12면
▲ 왼쪽 위에서부터 17일자 조선일보 12면, 경향신문 1면, 한국일보 10면, 동아일보 12면

성폭행 혐의 스리랑카인 재판을 보도한 17일자 신문

조선 12면, 20년前 대구 여대생 성폭행한 스리랑카인 본국서 재판 받는다
경향 1면, 20년전 대구 여대생 성폭행범 스리랑카 자국법 심판 받는다
한국 10면, 대구 여대생 성폭행 스리랑카인 20년 만에 단죄
동아 12면, 대구 여대생 성폭행 주범 스리랑카인 본국서 재판

대구 여대생 피살, 20년만에 스리랑카인 법정 세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17일자 신문에 난 이 소식을 듣고 늦게나마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18일자 한국일보 10면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숨진 여대생의 아버지가 한국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대구 여대생 성폭행범은 스리랑카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버지 정현조씨는 이 모든 것이 소설이라며 경찰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초동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버지 정씨에 따르면 20년 전 경찰은 속옷이 벗겨진 사고현장에서 최초 단순 교통사고라며 엉터리 초동수사를 벌인데 이어 계속해서 지금까지 부실 수사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조목조목 경찰의 수사 허점을 지적했다. 우선, 사건 발생 2년 뒤 경찰이 범행 증거로 제시한 숨진 딸의 속옷 사진이 실제와 달랐다. 당시 경찰은 정액 양성반응이 나왔다며 딸의 팬티와 거들 사진을 보여줬는데, 숨진 피해자와 속옷을 같이 입는 동생이 언니 것이 아니라며 증거물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거부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아빠 “스리랑카인은 진범 아니다” 놀라운 반전

▲ 18일자 한국일보 10면
▲ 18일자 한국일보 10면
무엇보다도 20년전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다 트럭에 치여 숨졌을 때 딸의 속옷이 벗겨져 있는 등 성범죄 정황이 뚜렷한데도 경찰은 애초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사건 이틀 뒤 부검의가 아버지에게 딸의 몸에서 정액이 조금 검출됐으니 국과수 조사결과가 나오면 수사가 시작될 거라고 했지만 아무 연락도 없었고 1년 뒤 받아본 부검서에는 정액채취검사 자체를 아예 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경찰이 부검당시 체내에서 정액을 통해 범인의 DNA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이후 수사는 속옷에만 의존하게 됐다.

스리랑카 검찰이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에게 강간죄가 아닌 성추행죄를 적용한 것도 정액이 몸속이 아닌 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버지는 경찰에 수십 차례 재수사를 요구했고, 그 결과 2013년에야 스리랑카을 붙잡았다. 사건 발생 15년 뒤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스리랑카인을 만난 뒤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범행을 제대로 설명도 못했고, 딸의 사진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초동수사를 엉망으로 한 경찰이 면피용으로 스리랑카인을 자국 법정에 세웠지만 진범은 따로 있다고 확신했다. 아버지의 공소시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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