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17일 제주에 있는 예멘 국적 난민신청자 2차 심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에도 373명 모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불인정 판정받은 난민 373명 중 339명에겐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고, 나머지 34명에겐 ‘단순 불인정’ 결정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14일 1차 발표때도 23명 모두 불인정하고 이들에게 인도적 체류만 허가했다. 

결국 법무부는 1,2차 발표에서 심사한 396명 모두 불인정하고 단 한 명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엔 불인정 받은 373명 중 34명에겐 ‘단순 불인정’ 결정을 내려 이들을 강제출국시킬 길도 열어놨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난민법상 난민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하는 불인정 결정이지만 당장 강제추방하면 생명, 신체에 위협을 받을 위험이 있어 인도적 차원에서 임시체류를 허용하는 제도다. 따라서 인도적 체류허가도 불인정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법무부의 난민심사 기준이 국제사회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의 3차 심사 발표를 앞둔 현재 예멘난민 신청자는 모두 484명이다.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제주난민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범도민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0%의 난민인정률은 현행 난민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되묻게 한다”며 법무부가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예멘 난민신청자들을 재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내전이나 강제징집 피신’은 가장 전통적인 난민보호 사유 가운데 하나”라며 “34명에 대해선 단순 불인정 결정을 내려 차후 잠정적인 강제송환 대상으로 만든 것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고 밝혔다.

 

▲ 김도균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청장이 17일 브리핑을 열어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김도균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청장이 17일 브리핑을 열어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예멘인은 세계 각국에서 난민 인정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2017 UN 글로벌 동향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예멘 난민신청자의 난민인정률은 58.1%다. UN은 올초 예멘이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신혜인 공보관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유엔난민기구는 내전과 같이 ‘일반화된 폭력 사태로부터 피하는 경우’에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일반화하기는 어려우나 (유엔난민기구 기준에 따르면) 이번 인도적 체류자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되는 분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난민과 관계자는 “내전 중이라는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예멘의 난민인정률이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국 난민법에 해당하는지를 보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우리 난민법은 인종과 종교, 국적, 신분,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 받고 출신국의 보호를 못 받는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 2017 UN 글로벌 동향 보고서 갈무리
▲ 2017 UN 글로벌 동향 보고서 갈무리

예멘인 총 362명이 받은 ‘인도적 체류’ 지위도 체류를 허가할 뿐 ‘인도적’이지 않다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타국에선 인도적 체류 지위(보충적 지위)에 대해 난민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인들은 1년 동안 국내에 체류하며 취업할 수 있다. 또 ‘출도 제한 조치’가 해제돼 제주도를 벗어날 수 있다. 법무부는 “향후 본국으로 돌아갈 정도로 국가 정황이 좋아지거나, 국내외 범죄사실이 발견될 경우 체류허가가 취소되거나 더 이상 연장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혜인 공보관은 “모든 국가를 단순비교하기는 어려우나, 대한민국에서 부여한 인도적 체류자는 굉장히 기본적인, 근로할 권리 외에는 제공하고 있지 않아 권리의 ‘갭’이 난민인정자와 큰 편”이라고 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일시적 보호에 대한 2011년 지침’에 따라 일시적 보호 대상자(보충적 지위)의 가족 재결합권을 인정한다. 신 공보관은 “다른 나라들은 인도적 체류 허가자들에게도 △가족재결합 △의료보험 △자녀 교육 등 혜택을 부여하는데 한국은 이런 게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 지난 9월16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난민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난민 어린이가 집회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9월16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난민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난민 어린이가 집회 참가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난민인권네트워크와 범도민위는 “인도적 체류 허가 제도가 현 상태로 유지되면 허가자들이 한국 사회구성원으로 스스로 안전하게 정착하길 기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정착 지원제도의 공백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법무부가 결과를 발표한 난민신청자 373명은 18~19일 사이 본인의 심사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법무부는 “보류 결정된 85명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면접 또는 추가조사를 완료해 조만간 심사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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