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가 사립유치원 회계비리를 공론화시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지자 비난이 커지고 있다.

한유총은 16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긴급회견을 열어 “학부모께 심려를 끼쳐 죄송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유총은 이번 비리가 불거진 것에 “회계감사 기준이 사립유치원에 맞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유총은 “십여년 간 사립유치원 운영에 맞지 않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해달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립유치원에 맞지 않은 회계감사 기준에 의해 비리라는 오명을 썼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유총은 비난여론에 밀려 고개를 숙인 듯 했지만 비리 책임을 정부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빈말’ 사과한 셈인데 사립유치원 비리 명단을 공개했던 박용진 의원에게 소송까지 벌일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유총의 이중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사진=민중의소리
▲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사진=민중의소리

박 의원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국내 3대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저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저는 한유총이 어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학부모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반성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뒤로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큰 배신감이 들었다. 이는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명백히 배신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도 무시할 수 없어

한유총은 과거에도 실력행사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조직된 표로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단체로 이름이 나 있다.

한유총은 1995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해 전국 16개 시도 지회 4000여명의 사립유치원 회원을 둔 단체다. 지난 2016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8987곳의 유치원 중 국공립유치원은 4696곳이었고, 사립유치원은 4291곳이었다. 유치원생으로는 17만명과 53만명이었다. 원생 75%가 사립유치원을 이용하는 셈이다.

사립유치원을 대표하는 한유총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배경에는 과거 정권과 관련돼 있다. 전두환 정권은 유아교육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해 유치원 취학률을 38%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사립유치원 증설이 이뤄졌는데 시설규정이 완화되고 유치원 학비 제한이 사라졌다. 1980년과 1987년 사이 사립유치원은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 지원도 늘어났다. 2016년 기준 사립유치원에 투입된 지원액은 2조 330억원이다. 유치원 한 곳마다 4억 7천만원 꼴이다.

한유총은 이해단체로서 정치권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2014년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대여금고에서 뭉칫돈이 발견됐다. 검찰이 돈의 출처를 수사한 결과 출판기념회 수익금으로 드러났다. 신 의원이 한유총의 민원성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난 뒤 한유총 관계자들로부터 출판기념회 축의금으로 3천만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게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법원은 신 의원이 2013년 9월 한유총으로부터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을 발의해주는 대가(뇌물)로 출판기념회 축의금 336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인정하고 “헌법상 청렴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이 이해관계인으로부터 특정한 청탁을 받아 그 죄책이 중하다”며 징역 3년 벌금 3100만원을 선고했다.

2014년 8월 한 언론이 사립유치원의 양도·승계를 가능하게 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이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해 한바탕 난리가 났던 일도 있었다.

문화일보는 야당 의원(당시 새정치연합)들이 ‘입법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각종 행사에 참여했으며, 또 일부 야당 의원들이 한유총 숙원사업인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강하게 지원해 대선 공약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을 보면 해당 언론사가 주장하는 내용이 전혀 담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시 문 후보도 이런 공약을 언급조차 안 했다”고 부인했다.

실력행사 막강, 극렬 저항에 개혁 번번이 무산

한유총이 출범 때부터 주장했던 내용은 국공립유치원 확대 반대다. 지난 2010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의 1동 1공립유치원 공약에 한유총 회원 300명은 기자회견을 열어 “저출산으로 인한 유아수 감소로 유아교육기관 시설이 남아돈다. 무분별한 공립유치원 설립은 사립유치원 죽이기”라고 반발했다.

한유총은 정부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유치원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평가를 받는 것에는 극렬히 반대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부터 유치원의 운영실태 진단과 유아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 체계적 정보 제공을 통한 학부모의 선택권 보장 등을 위해 기관평가를 진행해왔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사립유치원도 기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유총은 장학지도를 해마다 받는데 기관평가까지 받으면 이중평가로 교사들 업무가 가중되고 수업준비에 차질이 빚어진다며 반대했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가장 중요한 기초교육인 유치원을 선택함에 있어 학부모들은 평가를 받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며, 평가 받지 않은 곳을 당연히 꺼려한다”며 평가를 거부한 사립유치원의 명단공개를 요구했다. 당시 기관평가를 진행했던 광주‧전남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해당지역 국공립 유치원 562곳은 대부분 기관평가를 받았지만, 사립유치원은 239곳 중 6곳만 평가를 받았다.

2012년 한유총은 학부모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학부모가 사립유치원에 내는 교육비인 납입금 동결을 밝혀 ‘깜짝’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생색내기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납임금 동결 참여 유치원에 학급당 운영비와 교원처우개선비를 증액시키기로 한 게 드러났다. 겉으로는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정부 예산을 받기 위해 납입금 동결 입장을 밝혔다.

▲ 10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을 무산시키려는 전국 사립유치원 운영자·원장들의 협의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회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10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을 무산시키려는 전국 사립유치원 운영자·원장들의 협의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회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2016년 1월 한유총은 경기도의회를 점거하기도 했다. 한유총 관계자는 500명은 2016년 누리과정 지원예산이 전액 삼각됐다며 복원을 요구하면서 경기도의회를 점거했다. 이들은 민주당 의원이 회의실에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서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한유총은 2016년 6월 국고지원 확대를 주장하면서 집단 휴원을 강행할 것이라고 하면서 정부와 대립했다. 한유총은 “교육부는 국공립 유치원 원아들을 위해 매월 1인당 98만원의 예산을 지원하지만, 사립 원아들을 위해서는 3분의 1 정도인 31만원 정도만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집단휴원 으름장을 놨다.

교육부는 해명자료에서 “국공립유치원 원아 1인당 지원액에는 국공립 유치원의 특성상 국가 및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시설비와 인건비, 운영비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국공립과 사립 유치원의 원아 1인당 지원액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국공립유치원 원아 1인당 지원되는 유아학비는 6만원, 방과 후 과정비는 5만원인데 비해 사립유치원의 원아 1인당 유아학비 지원액은 22만원, 방과후 과정 지원액은 7만원이어서 사립유치원 지원액이 많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그리고 2016년 연말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개정안을 교육부가 입법예고하자 한유총은 사활을 걸고 반대에 나섰다. 교육부는 유치원도 교육기관이라서 시설사용료를 인정하지 않도록 개정안을 냈지만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은 재산세를 납부하고 있다며 시설사용료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시 한유총은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지난해 년 7월 한유총 회원들은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진흥원을 점거했다. 당시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가 교육부와 서울교육청의 의뢰를 받아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 주요 내용은 2016년 기준 24%였던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리는 방안이었는데 경영난을 겪는 사립유치원을 사들여 공립단설유치원으로 운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자 한유총은 “학부모 재정지원의 평등은 전혀 담기지 않고, 출산율 저하로 취원율이 감소하는 데도 공립유치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사립유치원 죽이기 정책”이라며 점거농성을 벌였다.

투명성 확보부터 시작해 국공립 전환 논의해야

그해 9월 한유총은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국·공립유치원 확대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집단휴업을 강행키로 했다. 구호는 그동안 요구해왔던 정부 지원과 국공립유치원 확대 반대였다. 하지만 한유총은 비난 여론이 거세 집단휴업 결정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성명에서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국공립유치원이나 학부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한 이익단체의 정치력을 발판 삼아 정부의 유아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해왔다”며 “이번 집단휴업 행동은 정부를 압박하려는 수준을 넘어서 선택권이 없는 부모들을 인질로 삼아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관철시키려는 협박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유총은 정부에 협상안으로 사립유치원의 재무회계 준칙에 ‘시설사용료’ 항목을 새로 만들어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돼 비난을 받았다. 국가의 역할을 사립유치원이 맡고 있기에 시설 사용 대가로써 임대료를 혈세에서 지원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한유총의 주장을 ‘사유재산 인정하라, 부정감사 중단하라’라고 정리할 수 있다면서 사립유치원 매각방안을 제시했다. 사립유치원 문제해결안 중 가장 과격하게 보이는 내용이다.

정창수 소장은 “일부 억울할 수도 있는데 시효기간을 둬서 매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퇴로를 열어주고 공공성을 강화하자”며 “동시에 회계시스템을 도입해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립유치원들이 장사가 안 된다 싶으면 국공립으로 전환하고 공공에 넘기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 매각 유예기간을 10년 정도 두고 국공립 유치원 확대와 민간유치원 회계감독을 전제로 정부지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내용이다.

정창수 소장은 “국공립유치원을 예산 때문에 못 짓는 게 아니라 한유총 등 저항 때문에 못 짓는다”며 “학부모 조직표도 정권이 무시할 수 없다. 일단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투명성만 보장돼도 이들이 함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현재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현실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