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남성 A씨가 여성 B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남성 A씨의 아내가 청와대에 억울하다며 청원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곰탕집 CCTV가 공개되면서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여성 B씨에게 2차가해도 벌어졌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여성 B씨는 성추행에 이어 2차피해에 고통을 호소했다. 이후 남성 A씨는 법정 구속 38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남성 A씨가 억울하게 지나친 법정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의 시위가 오는 27일 혜화역에서 열린다. 이에 또 다른 단체가 ‘맞불집회’를 예고했다. ‘남성과 함께 하는 페미니즘’(남함페)라는 단체로, 지난해 독서모임으로 출발해 여러 페미니즘 활동을 해왔다. 미디어오늘은 왜 이들이 ‘맞불집회’를 하는지 들어봤다. ‘남함페’ 운영진이자 ‘맞불집회’ 주최자인 세 남성, 민영‧니제‧세포와 인터뷰는 15일 오후 7시부터 1시간30분 가량 서울 영등포구 미디어오늘 사무실에서 있었다.

미디어오늘: 27일 당당위에 맞불집회를 준비한 계기는?

민영: ‘곰탕집 사건이 알려진 시작이 청와대 청원이랑 커뮤니티였다. 특히 보배드림이라는 커뮤니티에서 화력을 받으면서 담론화가 됐다. 당당위라는 조직의 생성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시위를 하겠다고 하니까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함페‘ 내부에서 맞불집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 준비했다. 우선 집회신고는 2000명으로 했다. 여러 단체의 연대서명이 이어지고, 남은 기간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

세포: 집회에서 마스크도 나눠줄 생각이다. 마스크를 나눠주는 이유는 ‘당당위’ 시위자나 다른 행인들이 시위 참여자 얼굴을 찍고 신상을 캐거나 괴롭힘을 할까봐 방지하려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당당하게 얼굴을 내놓고 해라’라고 하는데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미디어오늘: 집회에서 마스크를 쓰고, ‘미투’ 운동에서 얼굴을 가리면 당당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영: 그들은 마스크를 안 쓸 수 있는 것도 권력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건데.

니제: 얼굴을 드러내도 상관이 없는 사회라면 드러내고 할 거다. 그런데 트윗 하나에 해고 당하는 세상이다. 얼굴이나 신원을 몰라도 2차가해 당하고, 얼굴만 알아도 ‘지인 합성’이라면서 알몸과 합성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어떻게 얼굴을 내놓을 수 있겠냐. ‘당당하면 얼굴을 내놓고 하라’는 논리는 이런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
세포: 얼굴 내놓고 했다고 2차 가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얼굴 품평하고, 성희롱 하고, 더 거세게 공격하고.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10월27일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의 시위에 맞불집회 성격으로 시위를 연다. 사진은 시위홍보 포스터.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10월27일 '당당위'(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의 시위에 맞불집회 성격으로 시위를 연다. 사진은 시위홍보 포스터.
미디어오늘: ‘당당위’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가.

민영: 그들은 1차적으로 '성추행의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슴만튀’, ‘엉만튀’ 같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성추행에 대체 어떻게(그들이 원하는 형태의) 증거가 남나.

니제: 그리고 만약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들, 예를 들어 화장실처럼 CCTV를 설치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할 건가. 증거가 없으면 모두 무죄인가. 이런 범죄를 잡으려고 ‘자유 심증주의’(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기는 주의)가 채택이 된 배경도 있다. 성범죄 특성상 사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데 그런 일을 그저 사적인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세포: 그동안 성범죄에 관용적 판결이 나와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성범죄 판결에서 무죄나 집행유예가 자주 나오니까, 실형 6개월에 화들짝 놀란 거다.

니제: 맞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 양형기준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양형기준 범위에 있는 처벌이었다.

민영: 2차 가해 중 ‘신체가 국보냐’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 남의 신체의 가치를 하찮게 생각한 거다.

미디어오늘: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때 비판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니제: 남자들은 ‘여자한테 사랑 받으려고 남자면서 페미니스트인 척 한다’는 식으로 많이 이야기 한다. 일종의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우리 남자들끼 힘을 모았는데 뭔가 이탈자가 생긴거다. 남성집단에 균열을 내는 사람이 생기니까 나머지도 흔들릴까봐 불안감의 표출인 듯싶다. 여성들 마음에 들려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면,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운동하나. 퀴어들 사랑 받으려고 퀴어퍼레이드 나가나. 동물로부터 사랑받으려고 동물권 운동하나. 말이 안되잖아. 그런 말은 남자는 무조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본다는 여성혐오적 사고가 깔린 발언이다.

미디어오늘: 페미니스트 내부에서도 남성이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발화권력’을 가져간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

니제: 불쾌함을 느끼는 것을 이해한다. 몇몇 아이돌만 봐도 남성이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개념돌’이 되지만 여성 아이돌은 ‘82년 김지영’을 읽었다고 난리가 난다. 또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트위터 하나, 후원 하나, ‘좋아요’ 하나 잘못 눌렀다고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다. 반면 남자들은 “와, 남잔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네"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기 쉬운 위치다.

민영: 저희 활동을 누군가 트위터에서 ‘모피코트 입고 동물보호 운동하네’라고 언급한 걸 본 적 있다. 움찔했는데, 결국 그런 비판이 여성들이 받는 비판과 달리, 내 삶을 위협하거나 하진 않는다. 이런 비판을 받는 건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니제: 여성해방을 남성이 할 때, 불쾌감을 느끼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활동을 ‘남성 내부고발’에 집중하려는 것도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에 대한 지적을 하는 분들도 이런 활동을 할 때는 큰 지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남자들 문화에 속해있으니 더 잘 말할 주제인 것 같다.

미디어오늘: 각자 페미니즘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니제: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범인이 직접 이야기를 했다.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라고.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묻지마 살인사건’도 압도적으로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었다. 그리고 강남역 사건 이후 남성과 여성의 반응이 다른 걸 보면서도 많이 놀랐다. 남성은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야’라고 말하기 급급했고, 여자들은 정말 무서워서 한참을 공중 화장실 못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걸 보고 같은 사건에 이렇게 반응이 다르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민영: ‘미러링’표현들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을 때 친구한테 ‘한 대 맞았다고 미러링이란 걸로 상대를 한 대 때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가 ‘지금까지 천대 만대, 맞아온 사람들이 허공에다 주먹질 한 번 하는 게 뭐가 그렇게 기분 나쁘냐’라고 했는데 그때 내 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재기해’ 같은 말, 기분이 나쁜 거 외에 어떤 실질적 피해가 있나? 이런 생각을 했다.

니제: 김치녀, 된장녀 같은 말들은 여자들을 검열하게 만들지만 한남충 이라는 말은 남자들을 화내게 만든다. 거기서 차이가 있다.

세포: 어쩌다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알았고 그걸 계기로 관련 글을 읽고, 그러다 보니까 이게 맞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극적으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미디어오늘: ‘남함페’나 개인 차원에서 더 관심 갖는 주제들이 있나.

세포: 단체 차원에서는 사이버성폭력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반사이버 성폭력 스티커를 배부하고 남자화장실에 붙였다. (이들은 가방 안에서 ‘보는 너도 가해자다’, ‘안 보면 사라진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꺼내 보였다.) 지금 현행법은 불법촬영물을 촬영하거나 유포하면 불법이지만 소지한 것은 처벌하지 않아 문제의식이 없다. 불법촬영물을 소지하고 보는 것은 재유포 가능성이 있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남자 화장실에 불법촬영물과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지적문구를 적은 스티커를 제작해 붙이는 활동을 했다. 그들이 제작한 스티커. 사진=남함페 제공.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은 남자 화장실에 불법촬영물과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지적문구를 적은 스티커를 제작해 붙이는 활동을 했다. 그들이 제작한 스티커. 사진=남함페 제공.

민영: 개인적으로, 출산의 위험이나 어려움를 공부하면서 마침 만삭인 친구가 있었다. 임신 과정에서 ‘침덧’이라는 걸 들었는데 침을 삼켜도 구토가 나온다더라. 임신과 출산에 너무 모르는 게 많아 놀랐다. 원래 예전부터 결혼하지 않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에 출산도 추가됐다. 임신과 출산은 명백히 목숨 걸고 하는 건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 아이를 낳아줘’라면서 목숨을 걸어달라는 게 너무 무서운 말 같다.

니제: 몸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바람직한 남성의 몸, 바람직한 여성의 몸이 너무 정형화 돼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포: 퀴어 문제와 성매매 문제에 관심이 많다. 저 역시 퀴어이기도 하고, 성매매는 왜 많은 남성들은 여성을 성매매의 대상을 볼까 하라는 질문부터 어떻게 하면 이런 시선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오늘: 앞으로 어떤 기획들을 할 건지 알려달라.

세포: 우선 당당위가 시위 제목 앞에 ‘1차’를 붙였더라. 지금 당장은 그들의 집회가 2차, 3차로 이어진다면 그때마다 맞불집회를 여는 일을 할 거다.

민영: 이번 시위에는 우선 저희가 받은 대독가능한 지지문을 발표하고,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사건 피해자분이 받았던 2차가해성 댓글들을 인쇄해 전시해 놓으면 시위 당일 참여하시는 분들이 포스트잇에 이 댓글을 규탄하는 글을 적어서 그 위를 덮을 거다.

니제: 우선 27일 혜화역 시위에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고 그 누구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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