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최근 4년간 위탁한 연구과제를 받은 책임연구자 가운데 지난해 탈원전 정책에 반대성명을 냈던 원자력공학자 71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이 기간에 모두 207억원 넘는 연구과제 용역비를 받았거나 향후 받을 예정이다.

원자력사업자인 한수원이 직접 준 용역과 원자력연구원이 준 연구과제 용역 모두 한수원이 내는 원자력연구개발기금으로 충당된다. 사실상 원자력 사업자들 돈으로 연구과제를 했다는 뜻이다.

미디어오늘은 16일 원자력연구원과 한수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종훈 의원(민중당‧울산 동구)에 제출한 ‘연구과제 내역’ 및 ‘연구용역 현황’에 나온 연구과제 932건(712건+220건)을 전수조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원자력연구원이 지난 4년간 위탁한 연구과제는 모두 712건에 375억5768만원이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을 두고 ‘제왕적 조치’라며 즉각 중단하라고 선언한 원자력공학 관련 교수 417명 가운데 71명이 지난 4년간 원자력연구원과 한수원의 연구과제 책임연구원으로 등재돼 있었다. 이들이 받은 연구비 총액은 207억1467만원이었다.

원자력연구원 연구과제의 경우 탈원전 반대에 서명한 교수 58명이 포함됐고, 연구비는 모두 81억1300만원이었다. 여기엔 지난해 탈원전 반대 성명에 앞장선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2억원), 정범진 경희대 교수(1억원+한수원 연구과제 4억원), 황주호 경희대 교수(2억원)도 포함됐다.

특히 원자력안전위원회 전문위원장이자 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장을 겸임하는 제무성 한양대 교수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세 종류의 연구과제 6건을 수탁해 모두 2억8000만원의 연구비를 수령했다. 원자력 규제기관의 전문위원회를 총괄하는 학자가 원자력시설이용자인 연구원으로부터 과제를 받고, 탈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낸 것이다.

이밖에도 정해용(세종대 원자핵공학, 3억9000만원), 홍서기(경희대 원자력공학, 2억3000만원), 최성열(울산과학기술원 기계항공및원자력공학, 2억8500만원), 나만균(조선대 원자력공학, 2억9700만원), 임만성(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 4억1000만원) 등 58명 중 42명이 원자력공학 전공 교수였다.

한수원 연구과제의 경우 용역대상자 수는 훨씬 적지만 용역비는 훨씬 컸다. 지난 4년간 한수원 연구과제 220건 가운데 탈원전에 반대한 교수 21명이 용역기관의 책임연구원이었다. 이 가운데 8명은 원자력연구원에서도 연구과제를 중복 수행했다. 용역비 총액 3199억9562만원 가운데, 이들 21명의 교수들이 받은 금액은 모두 126억167만원에 달했다. 

박병기 순천향대 에너지환경공학과 교수(31억3808만원)와 김창락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16억7300만원), 이덕중 울산과학기술원 교수(14억6000만원) 등 10억원대 과제를 제외하고도 대체로 용역비는 교수별로 수억원대에 달했다. 책임연구자 21명 중 3명을 제외한 18명이 원자력공학 전공 교수였다.

▲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연구과제 위탁을 한 책임연구자 가운데 지난해 7월 탈원전 반대를 선언한 교수들이 받은 용역비 내역을 정리한 표. 김종훈 민중당 의원 제출자료를 미디어오늘이 분석. 그래픽=이우림 기자
▲ 지난 2015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연구과제 위탁을 한 책임연구자 가운데 지난해 7월 탈원전 반대를 선언한 교수들이 받은 용역비 내역을 정리한 표. 김종훈 민중당 의원 제출자료를 미디어오늘이 분석. 그래픽=이우림 기자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역비는 원전 사업자의 돈에서 충당된다. 이 비용 대부분은 ‘원자력연구개발기금’으로 제공되는데, 이 기금은 한수원이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 1킬로와트당 1.2원을 내는 것으로 조성된다. 원자력 발전량을 늘릴수록 연구기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황순관 원자력연구원 미디어소통팀장은 16일 “한수원에서 전기를 생산해서 한전에 판 돈에서 1킬로와트당 1.2원씩 충당하며, 많이 팔고 오래 돌릴수록 생산량이 많아져 그에 따라 기금도 느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기금 만이 아니라 정부에서 직접 받은 일반회계 예산으로 일부로도 (연구과제 용역비로) 충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탈원전 반대에 참여한 교수들이 이해관계의 굴레안에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며 “탈원전 반대가 순수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상당수는 이해관계에 따른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평가했다.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 민중당)은 “방송과 언론에서 원전 부흥에 나섰던 교수들이 다수 확인된다”며 “원자력학계가 여전히 막대한 세금과 한수원 지원을 받으며 연구보다 정치적 활동에 매진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원안위 전문위원들이 연구비 지원을 받은 것을 두고도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등 안전규제 허가에 실질적 역할을 하는 전문위원들이 사업자들에게 돈을 받는다면 제대로된 심사가 되겠는가”라며 “원안위원 수준으로 자격을 제한하는 법개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이라고 밝혔다.

이에 지난해 탈원전 반대성명을 주도한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16일 “성명에 나선 교수들이 연구과제 때문에 한 것은 아니다”라며 “불의한 정책에 대한 의사표시로서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명한 사람중 연구과제를 받지 않은 사람이 더 많지 않느냐”며 “오히려 성명에 동참함으로써 연구과제에 불이익을 감수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
▲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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