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방송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이렇게 선출된 위원들에 의한 위원회 운영이 과연 정치적 중립성을 올바로 지켜낼 수 있는지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2005년 1월 방송위원회 노동조합 노보 내용이다. 13년이 지났지만 미디어 규제기구의 정치 종속은 변함없다. 지난해 국정감사 의제가 공영방송 정상화였다면 올해 국정감사에선 미디어규제기구의 ‘지배구조’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할 차례다.

현재의 미디어규제기구는 이명박 정부 때 완성됐다. 방송사 재허가 등 규제 권한을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고 방송 심의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전담했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 방통심의위는 ‘민간독립기구’라는 위상을 부여했지만 결국 다수인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다수결로 밀어붙이면서 ‘합의’ 정신은 사라진 채 오랜 기간 ‘방송장악’의 손과 발이 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상임위원 5인 중 3인을 정부여당에서 추천하고 2인을 야당에서 추천하는 방통위는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밀어붙이고 지속적으로 특혜를 안겼다. 방통위는 방송관리감독 기구임에도 공영방송에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와 제작 자율성 침해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방통위 승진대상자에 대한 국가정보원 신원조회에 “KBS, MBC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한 강경한 입장 피력”을 높게 평가한 대목은 방통위를 바라보는 정권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위원 9인 가운데 6인을 정부여당에서, 3인을 야당에서 추천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다수의 힘으로 ‘정치심의’로 일관하며 방송사를 길들였다. KBS ‘추적60분’, MBC ‘PD수첩’, JTBC ‘뉴스룸’ 등 정부 비판방송에 중징계를 내리고 우호적인 TV조선, 채널A 등에는 ‘봐주기’ 심의를 이어왔다. 자유한국당 집권기 민간인 명의를 도용한 ‘청부민원’으로 절차를 무시했고, 청와대는 방통심의위 ‘직원 및 위원 성향분석’ 문건도 작성했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미디어 규제기구가 ‘정치과잉’이라는 지적도 있다. 방통위는 방송분야의 비쟁점 사안 외면과 통신·ICT분야 전문성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는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최시중·이경재 등 언론계·정치권을 두루 걸친 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4기 방통위의 경우 상임위원 5인 전원 언론·방송분야 출신으로 뽑혀 통신·IT매체들이 불균형을 문제로 지적해왔다.

방통심의위 역시 여야 대립의 장이 되면서 비정치적 사안인 소수자, 약자와 관련한 내용 심의에 소홀하고 무심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이용자 권익보호 등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렸던 과거가 있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지난 10년 동안의 부작용은 충분히 드러났고, ‘폐기’된 법안에 개선방안이 담겨 있다. 과거 발의된 법안의 핵심은 ‘여야 비율 조정’이다. 19대 국회 때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통신심의위원을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여야 비율을 5:4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다. 최민희 의원은 방통위원 선임 때 여당 교섭단체와 그 외 교섭단체에서 각각 2명씩 추천하고 두 교섭단체가 합의하는 1명을 추가로 추천해 5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을 호선으로 정하는 법안을 제시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금준경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금준경 기자.

단순히 여야 추천 비율 조정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 주도의 추천 방식을 탈피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2007년 미디어규제기구 개편을 앞둔 가운데 참여정부가 제시한 ‘초안’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정부는 국가청렴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방송위원회 등의 선임 방식을 차용해 방통위 상임위원을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여야가 정치권 주도의 선임방식을 요구하면서 결국 지금 같은 지배구조가 됐다.

국회가 아니면 누가 방통위원을 추천할까.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대선 때 지역성 구현을 위해 위원 10분의 4 이상을 지방의회의 승인 후 시도지사 추천을 받자고 제안했다. 박만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2012년 기자회견 당시 심의위원 구성과 관련해 “헌법재판소 구성 모델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위원회 구조를 다층으로 나눠 ‘전문성’을 높이고 권력을 분산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방통위 산하에 각계 추천을 받은 비상임위원회인 ‘방송공공성정책위원회’를 두고 방송공공성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언론노조는 상임위원 수를 증원하고 방송, 통신, 뉴미디어 등 각 분야에 특화된 전문소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방통심의위는 현재 언론계, 시민사회, 학계, 법조계 등의 인사들로 ‘방송’(13인) ‘광고’(10인) ‘방송언어’(11인), ‘통신권익보호’(11인) 등 분야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데 민언련은 특위를 소위원회로 전환하고 심의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방통위 제공.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방통위 제공.

최근에는 성별 독점과 관련한 개선 논의도 부상한다. 20대 국회에서 진선미·남인순 의원이 발의한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은 미디어 규제기관의 위원 선임 시 특정성별의 비율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민참여’ 제도화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방통위, 방통심의위 모두 시민참여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대 때 최민희 의원은 심의 민원을 제기한 민원인에게 회의 발언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민언련은 시민이 심의에 참여하는 ‘시민배심원제’를 제안했다.

어떤 방안을 추진하든 선결조건은 정부여당의 기득권 내려놓기다. 현 정부가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고 구조적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 현 체제가 유지되는 이상 언제든 같은 과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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