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진실과미래위원회(위원장 정필모, 진실미래위)가 고대영 전 사장 시절 KBS 보도본부에서 사실상 ‘화이트리스트’ 내지 ‘블랙리스트’로 의심되는 문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진실미래위가 조사 과정에서 직원 이메일을 사찰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상상이라며 엄정 대처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KBS 진실미래위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개월 간의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필모 위원장(KBS 부사장)과 진실미래위 실무 기구인 진실과미래추진단 복진선 단장, 윤성도 부단장이 참석했다.

지난 6월 출범한 진실미래위는 현재까지 6개 사안에 대한 조사를 완료해 보고서를 의결했다. △‘KBS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의 직장질서 문란 및 편성규약 위반 등 △‘정상화 모임’ 관련 외부 기고문으로 인한 기자 부당인사 △영화 ‘인천상륙작전’ 보도 관련 강압적 취재 지시 및 부당징계 △성주 군민 사드 배치 반발 보도 관련 강압적 취재 지시와 편성규약 위반 △‘시사기획 창-친일과 훈장’ 편 제작방해 및 불방 △2012년 파업 부당 징계 진상규명 및 피해자 구제 등이다.

▲ KBS 진실과미래위원회가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복진선 진실과미래추진단장, 정필모 진실과미래위원장(KBS 부사장), 윤성도 진실과미래추진단 부단장. 사진=김현정 PD
▲ KBS 진실과미래위원회가 16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복진선 진실과미래추진단장, 정필모 진실과미래위원장(KBS 부사장), 윤성도 진실과미래추진단 부단장. 사진=김현정 PD

특히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이하 정상화모임)과 관련해서는 “정상화 모임 참여 여부가 일종의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로 작용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정상화모임은 지난 2016년 총선을 앞둔 3월11일 정지환 보도국장 등 당시 보도본부 팀장급 이상 인사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모임이다. 편성규약에 근거한 KBS기자협회의 자사 보도 비판 활동을 ‘해사행위’로 규정하는 등 수차례 성명을 내며 활동했다.

진실미래위는 조사 과정에서 당시 KBS보도본부가 모임 가입자들을 별도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기협정상화1차2차129명명단’이라는 제목의 엑셀 파일로 KBS 본사 기자 563명을 부서별로 나열한 뒤 비고란에 정상화모임 가입 여부를 구분해 표시한 문건이다. 보도본부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보도기획부가 위원회 요청에 따라 제공한 자료다.

▲ KBS 진실미래위원회가 사실상 KBS판 블랙리스트 및 화이트리스트라 추정하고 있는 문건. '기협정상화1차2차129명명단'이라는 제목의 이 엑셀파일은 KBS 보도본부 기자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입수했다. 사진=KBS 제공.
▲ KBS 진실미래위원회가 사실상 KBS판 블랙리스트 및 화이트리스트라 추정하고 있는 문건. '기협정상화1차2차129명명단'이라는 제목의 이 엑셀파일은 KBS 보도본부 기자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입수했다. 사진=KBS 제공

진실미래위는 이 문서가 △기자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발견됐고 △인사권한을 가진 보도본부장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인사부에서 사용하는 기본 파일을 이용해 인사 자료로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중간 가공된 자료라는 점을 들어 KBS판 블랙리스트 또는 화이트리스트로 악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진실미래위 분석에 따르면 모임 결성 이후 양승동 사장 취임 전까지 선발된 취재기자 특파원 12명 가운데 10명이 모임 참여자였으며, 모임 출범 뒤 선발된 신규 기자 앵커 전원은 모임 가입자 가운데 뽑혔다. 보도본부 부장급 이상 보직자 60명 가운데 53명, 88%가 모임 참여자로 나타났다.

정상화모임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기자들이 불이익을 본 사례도 있었다. 정연욱 기자는 지난 2016년 7월 한국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뒤 보도국장 요구로 경위서를 제출했고 이틀 만에 제주총국으로 강제전보됐다. 정 기자는 이후 인사명령효력정지 가처분 1심에서 승소하고 KBS가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원직 복귀했다.

정필모 위원장은 “정상화 모임에 가입해 혜택을 본 입장에서는 화이트리스트,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블랙리스트”라며 “기자를 이렇게 관리했다는 것은 공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16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복진선 KBS 진실과미래추진단 단장. 사진=김현정 PD.
▲ 16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복진선 KBS 진실과미래추진단 단장. 사진=김현정 PD
▲ 16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필모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KBS 부사장). 사진=김현정 PD.
▲ 16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필모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KBS 부사장). 사진=김현정 PD

한편 진실미래위는 KBS공영노동조합(위원장 성창경, 공영노조)이 주장하는 진실미래위 직원 이메일 사찰 논란과 관련해 “공영노조의 상상”이라고 일축했다. KBS 5개 노조 가운데 하나인 공영노조는 주로 직장생활 25년 이상인 직원 40여 명(지난 1월4일 기준)으로 구성돼있다. 지난 7월25일 공영노조가 성명을 통해 의혹을 제기한 뒤 KBS는 7월31일 공영노조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한 바 있다.

진실미래위는 공영노조 측 근거는 조사 진행 중 대상자들이 ‘자신의 메일을 보지 않고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주장한 것이 전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복 단장은 “전수조사를 통해 조사 과정에서 ‘이메일’, ‘메일’을 언급한 사례를 다 찾아봤다”며 “우리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악의적인 시비걸기”라고 주장했다.

진실미래위 활동 기한은 KBS 이사회 의결에 따라 내년 4월 1차 활동이 종료되며 필요 시 6개월 연장할 수 있다. 향후 조사에서는 과거 KBS 모금 방송, 4대강, 핵안보회의 등 정부협찬 방송을 비롯해 ‘관제’, ‘관급’으로 의심되는 방송 사례 등을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정 위원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알베르 까뮈 말을 인용했다. 그는 “과거 일을 유야무야 없던 일로 넘기거나 화합과 통합을 위해 묻어두면 KBS가 무엇을 바탕으로 달라지겠나. 진상조사와 적절한 조치, 제도적 보완장치가 KBS의 미래를 다시 열고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16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1차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김현정 PD.
▲ 16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1차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김현정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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