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자신들의 환경·생태·생업 등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침해에 저항하다 범하게 된 행위들과,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다 나라를 망치고 국익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 것 사이에 도대체 비교형량이 가능한가.”

지난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형법 전문가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감 본질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박 장관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강정마을 주민 사면·복권 검토’ 발언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서 여당 의원들과 언쟁을 벌이다 오전 국감이 파행되기도 했다.

표 의원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과정에서 사법처리된 주민들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 청구 철회와 사면·복권 검토가 “법치주의 파괴”라는 한국당의 의원들의 공세가 계속되자 국가에 해악을 끼친 진짜 ‘주범’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반격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함상 연설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고통받은 강정마을 주민을 위로했다. 사진=KTV 방송화면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함상 연설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고통받은 강정마을 주민을 위로했다. 사진=KTV 방송화면 갈무리
사실 표 의원 질의의 전제엔 국가가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의 공적 참여 또는 저항을 봉쇄하는 소송을 남발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이 11일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주민들에게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절차적인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유감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장관도 표 의원의 물음에 “공권력과 반대 의견을 가진 시민의 갈등 속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에 대해 그걸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 종결지을 것인지 많은 견해 차이가 있다”면서도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갈등을 치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정권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의 집회·시위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의 피해자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만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파업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세월호 범국민대회, 민중총궐기 집회 등 집회·시위 주최자 및 참가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액만 62억6000만원에 이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의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경찰청 국감에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유남영)의 국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취하 권고 관련 한국당 의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근본적으로 SLAPP 소송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쌍용차 경찰진압에 위법성이 드러났고 용산철거도 무리한 진압 작전을 한 것으로 경찰과 시민이 큰 피해를 봤다”며 “심지어 ‘경찰 댓글’의 시초가 용산 사건이고, 본격화된 게 공교롭게 쌍용차 사건인데, 이런 위법 상황에서 경찰 신뢰회복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은 무엇보다 시민의 정치참여를 막는 SLAPP 소송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도 “경찰청이 여러 사항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판단 과정에서 위원회에서 권고할 때 공권력 비례성과 인권침해 문제, 그리고 손해배상소송 자체가 사실상 정당한 시위를 막는 부당한 수단으로 지난 정권에서 의도적으로 활용됐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유남영 위원장은 “우리는 사실관계에 따라 국민통합과 인권존중, 경찰의 미래 방향에 비춰 어떤 게 가장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조치인가 판단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7월29일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경찰의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에 맞은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사진을 가리키며 경찰과 사측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지난 2009년 7월29일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경찰의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에 맞은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사진을 가리키며 경찰과 사측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앞서 지난 8월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쌍용차 파업과 고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경찰이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경찰력 행사로 인한 국민의 피해가 상당하나 아무런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가압류 사건을 취하할 것을 권고했다.

이미 국회에는 국가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기 위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안호영 민주당 의원)과 국가 등의 괴롭힘 소송에 관한 특례법안(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된 상태다.

안 의원은 “손해배상 청구의 피소자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의견 표명이 소송의 배경이라는 점을 법원에 소명하고 법원이 이를 인정할 경우 해당 소송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근본해결책은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기본권 주체인 국민을 상대로 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는 것 자체를 자제하는 것”이라며 “괴롭힘 소송 절차를 조기에 종결하고,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한 국민과 노동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민사소송과 집행에 관한 특례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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