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이 15일 TV조선 간부가 국정농단 취재·보도 방해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 사건 공동 고발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형사제1부 이슬기 검사실에 출석해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지난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집회를 이끈 시민단체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참여했던 실무진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3일 “정석영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을 포함한 TV조선 관계자들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정농단 사태 보도를 무마하려 부적절하게 내통하고 불법적으로 거래한 의혹이 있다. 당시 TV조선 취재팀의 국정농단 사태 취재·보도를 불법으로 방해했다”며 정석영 부국장과 안종범 전 수석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안진걸 소장은 퇴진행동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 뉴스타파는 지난7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 뉴스타파는 지난7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아울러 이들은 정 부국장과 안 전 수석 간 불법적 거래 혐의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를 인지하거나 보고 받고도 은폐·묵인한 의혹이 있는 당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도 촉구했다. 이들이 지목한 검찰 관계자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으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사건 수사팀장이던 한웅재 현 대구지검 경주지청장, 결재권자였던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현 사법연수원 부원장),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이다.

안 소장은 15일 통화에서 “언론과 정권 사이의 추악한 거래 범죄 중 최악으로 꼽히는 사건”이라며 “정 부국장 혼자서 보도를 막았을 리 없다. 그는 징계를 받지도 않고 승승장구했다. 그 윗선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기자들 취재를 방해하고 나아가 핵심 취재원(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의 통화 내용을 안종범 전 수석에게 갖다 바쳤다”며 “이는 사법 농단 못지않은 ‘언론 농단’이다. 재판 거래 못지않은 ‘기사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반드시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고발 발단이 된 것은 뉴스타파 보도다. 뉴스타파는 지난 7월 검찰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당시 정석영 TV조선 경제부장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안 전 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자사 기자들 취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TV조선은 지난 2016년 7월28일 보도에서 안 전 수석이 이 전 총장 사퇴를 종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전 총장은 TV조선에 “(안종범 수석이 전화로) 재단을 떠나줬으면 좋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이 전 총장은 재단 정상화와 사무총장 자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TV조선 취재에 소극적으로 응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날 보도가 나간 지 30분 뒤 이 전 총장은 정석영 부국장과 26분여 통화하며 “언론(TV조선) 보도는 인터뷰를 짜깁기한 것”, “안종범 수석님은 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단지 도와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만 유지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장 자신이 TV조선 취재에 응하긴 했으나 재단을 정상화하고 사무총장 자리를 지켜주면 안종범 개인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정 부국장은 이 전 총장과의 통화를 녹음한 뒤 녹음 파일을 안 전 수석에게 보냈다.

▲ 정석영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왼쪽)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진=뉴스타파 화면
▲ 정석영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왼쪽)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사진=뉴스타파 화면
TV조선이 청와대와 미르재단 의혹을 계속 보도하던 2016년 8월16일에도 두 사람은 통화했고 정 부국장은 이 통화 내용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이 전 총장은 정 부국장에게 “녹음파일이 공개되면 최순실·차은택이 재단 설립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밝혀질 것”, “안종범 수석이 신뢰를 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녹음파일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정 부국장은 이 내용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이 전 총장이 말하는 ‘녹음파일’은 미르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순실과의 회의 내용을 이 전 총장이 녹음한 것으로 최순실 게이트 초 미르재단과 최순실 관계를 입증할 ‘스모킹 건’으로 간주됐다. 당시 미르재단을 취재하던 TV조선 기자들은 이 녹음파일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정 부국장이 이 전 총장과 통화에서 이 녹음파일 존재를 인지했는데 통화 내용을 기자들이 아닌 안 전 수석에게 전한 사실이 드러나 ‘취재 방해’ 의혹이 제기됐다.

TV조선에서 후배 기자들을 이끌고 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한 이진동 전 사회부장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에는 정 부국장에 관한 서술이 있다. TV조선이 미르재단 모금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최초 보도했던 2016년 7월26일, 보도가 나가기 한 시간 전 주용중 TV조선 보도본부장실에서 정 부국장이 협찬을 이유로 보도를 막으려 한 정황이었다.

정 부국장은 지난 7월 뉴스타파 보도에서 “기자로서 어긋나게 살아온 바가 없다”는 말 외 구체적 답변은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미디어오늘은 정 부국장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그는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지난 2016년 4월부터 TV조선 보도본부장을 맡고 있는 주용중 본부장은 지난 7월 미디어오늘 통화에서 “(뉴스타파 보도) 내용은 안다”면서도 “이진동 부장 책에 다 나와 있고 그 이상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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