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남북고위급 회담을 취재키로 한 탈북민 출신 조선일보 기자를 배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기자단에 따르면 15일 새벽 6시 30분께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단에 전화로 “조선일보가 풀 취재 기자를 김명성 기자에서 다른 기자로 변경하지 않으면 통일부는 풀 취재단에서 조선일보를 배제할 방침”이라고 통보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공간상 제약에 따라 풀 취재를 담당할 기자를 순번에 따라 정하고 기자단과 취재 내용을 공유해왔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를 포함해 풀 취재단은 이날 남측지역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릴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로 돼 있었다. 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통일부가 풀 취재를 담당할 특정기자를 찍어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당국자는 “한정된 공간에서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데 김 기자가 활발한 활동을 해서 널리 알려졌으니 언론을 제한한다기보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해 협조를 구하는 것”이라며 취재제한 방침의 이유를 설명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통일부 방침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으로부터 김명성 기자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었느냐라는 질문에 “북한의 이의 제기는 없었고 자체적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답한 것을 봤을 때 이번 방침은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김 기자의 풀 취재를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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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은 “풀 취재단은 기자단이 규정에 따라 대표취재를 맡긴 것으로 해당 회사에서 누구를 보낼지는 전적으로 해당 회사에 권한이 있다”며 “기자단이 정한 풀 취재단을 통일부가 일방으로 배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단과 통일부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이날 고위급회담 대표단이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한 것이다. 책임은 제가 지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명균 장관은 “판문점이라는 상황, 남북 고위급회담에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한 저희의 판단”이라며 “어쨌든 계속해서 협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방침대로라면 탈북민 출신 기자들의 북한 관련 풀 취재는 앞으로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조 장관은 “미리 가정해서 말씀드릴 순 없다”고 말했다.

북한 지역에서 진행되는 행사 중 개별 언론사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취재의 경우 북한이 특정 언론사를 배제하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개별 취재가 아닌 풀 취재 형식으로 북한을 취재하는 경우 이번처럼 특정기자가 배제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김명성 기자는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김여정 부부장이 내려왔을 때도 풀 취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기자가 풀 취재에서 배제된 이유를 우리 정부 측 ‘스크린’을 통해 하자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법률 위반 소지가 있거나 내사 단계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면 취재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그런 문제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자사 기자의 풀 취재 불허 방침에 대해 “북한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통일부가 선제적으로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며 “특히 탈북민의 권리를 보호해야할 통일부가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특정인의 활동을 제약하는 건 부처의 역할에 반하는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고 보도했다.

김명성 기자는 통화에서 “올해 2월 김여정 부부장 등 북한에서 최고위층 인사들이 왔을 때도 펜기자 3명과 함께 풀 취재단에 속해 바로 옆에서 취재를 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며 “북한으로 올라가서 취재 하거나 북한으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았다면 이해할 여지가 있는데 이렇게 선제적으로 취재 제한 방침을 정한 것은 개인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뿐 아니라 인격말살"이라고 비난했다.

김 기자는 “통일부에선 지난 2월 풀 취재는 만찬행사였고 이번 취재는 판문점에서 열리는 고위급회담이라 공간이 협소해 북한 인사가 알아보면 회담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측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풀 취재 기자 명단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북관계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언젠간 이런 문제도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아프다. 관련해서 회사에 보고했고 대응절차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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