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서초구청 청원경찰 이아무개씨가 24시간 야간당직 후 돌연사했다. 당시 서초구청의 ‘옥외초소 폐쇄’ 징벌 사실이 확인되며 갑질 논란이 확산됐다. 청원경찰들이 난방기가 있는 옥외초소를 이용하다 귀청하던 진익철 전 구청장의 관용차 주차 안내를 제때 못했고 구청이 벌로 초소를 일정기간 폐쇄했다.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겨울이었다.

“시민은 보호해야 하고 우린 익사해도 되느냐.” 서울 한강사업본부 청원경찰들은 ‘얼음을 깨라’는 관리자 지시에 억울해했다. 이들은 직접 언 강가에 올라가 대형 망치로 얼음을 부쉈다. 자칫 얼음이 깨지면 강에 빠질 수 있었다. “일 떠넘기는 잡부 취급도 한두 번이지.” 당시 청원경찰들 간에 오고 간 자조다.

▲ 자료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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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경찰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었던 대표 직종이다. 청원경찰법이 ‘노동운동 등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해서다. 이들이 용기내어 기관 임원에 면담을 요청하면 ‘절차를 밟고 와라’는 말만 들었다. 다시 하급 관리자에 불만을 말해도 윗선까지 전달되는지 알 수 없었다.

70년 간 발이 묶였던 청원경찰들이 지난 11일 최초 노조를 만들었다. 2017년 헌법재판소가 단체행동권을 금지한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지난 9월 법이 개정됐다. 서울 청원경찰 500여 명 중 세자릿 수 청경들이 ‘서울공공안전관지부(공공운수노조)’에 모였다. 미디어오늘은 12일 장정훈 서울공공안전관지부장을 만나 설립 배경을 들었다.

“과태료 내셔야해요” 한마디에 멱살잡이

장 지부장은 “청원경찰법은 현장에서 쓰레기법이라 불린다”고 했다. 국가공무원법, 경찰공무원법, 지자체 조례 등이 주먹구구식으로 적용된다는 지적이다. 청원경찰법은 명확한 기준 없이 국가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법을 경우에 따라 달리 적용한다.

장 지부장도 ‘사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이지만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임용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자체의 관리를 받고 가끔 관할청 경비계에서 감독도 나오지만 일반공무원도 경찰도 아니다. 그는 “단체행동 금지할 땐 공무원, 대우는 민간 직원, 임금은 경찰공무원, 필요할 땐 잡부 취급한다”고 말했다.

장 지부장은 “그래서 매일 권한 문제에 시달린다”고 했다. 이들은 방호 의무는 있지만 권한은 없어 강제력이 없다. 쉽게 말해 불법행위자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순 있어도 강제로 볼 수는 없다. 장 지부장은 “과태료를 내라고 해도 ‘니네가 뭔데’라고 말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멱살 잡고 청경 신분증을 집어던지는 시민도 있다. 초동조치 의무는 주면서 신분증 확인할 행정권한도 제대로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장기적인 목표도 ‘법률 교통정리’다. 장 지부장은 “공무원도, 경찰도, 민간기업 직원도 아닌 상황을 정리해 주먹구구식 법적용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헌재는 2010년 ‘이들 업무의 공공성은 인정되지만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장 지부장은 “공공기관에서 공무를 보는데 공무원이 아닌게 이상하다”며 이 문제를 다툴 것이라 예고했다.

▲ 공공운수노조 서울공공안전관지부가 지난 12일 서울시의회에서 노조 출범 사실을 알렸다. 사진=서울공공안전관지부 제공
▲ 공공운수노조 서울공공안전관지부가 지난 12일 서울시의회에서 노조 출범 사실을 알렸다. 사진=서울공공안전관지부 제공

직원수첩에도 없었던 청원경찰들

현재 ‘뜨거운 감자’는 임금 삭감이다. 최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적용되면서 7월부터 임금이 20~40만원 줄었다. 이들은 주 52시간제가 의무가 아닌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여겨 갑작스런 삭감을 예상하지 않았다. 시간이 줄어든 만큼 인력은 확충되지 않았다. 장 지부장은 “임금이 보전되지 않으면서 노동시간이 줄어드니 자식 학원 보내는 가장들은 야간 알바라도 뛸까 발을 굴리고 있다. 노사 교섭으로 임금삭감과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장 지부장은 “일상적 차별은 서럽다”고 했다. 공공기관의 정식 직원이 아닌 이들은 ‘없는 존재’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일부기관은 직원 연락망이 종합된 직원수첩에 청원경찰을 제외했다. 한강사업본부 청원경찰 156명도 수첩 목록에 없었다가 직원들의 끈질긴 항의로 올해 포함됐다.

서울공공안전관 지부는 갑자기 생긴 노조는 아니다. 장 지부장은 3년 전 ‘서울 한강공공안전관통합협의회’를 만들었다. 156명 중 100여 명이 함께 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노조 합법화는 꿈에도 생각못했던 때다. 본부장,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경찰서 등을 수차례 두드리다 찾은 방법이다.

노조 합법화 후 협의회는 전 서울지역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노조가 결성됐다. 장 지부장은 “결국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건 노조밖에 없었다. 서울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 전지역에 청원경찰 노조가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2010년 기준 국가기관·지자체 청원경찰과 공기업 및 민간기업 청원경찰을 합한 수는 최소 1만2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중 국가기관·지자체 근무 인원은 7000명 정도다. 그 중 500여 명이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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