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 P스튜디오 비공개촬영회’ 사건 피해자 양예원씨가 공개증언에서 “피고측 변호인 질문이 피해자다움에 빠져있다”며 조목조목 대응했다.

양씨는 10일 오후 서울서부지법 이진용 형사4단독 판사 심리로 열린 비공개촬영회 성폭력 사건 피해자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피해자 증인 2명 중 양씨 신문은 공개로, 김아무개씨 신문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 모델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동호회 회원 모집책으로 활동한 최아무개씨가 지난 8월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모델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동호회 회원 모집책으로 활동한 최아무개씨가 지난 8월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P스튜디오 비공개촬영회 ‘모집책’으로 지목됐던 최아무개씨는 지난 8월 형법상 강제추행과 성폭력특별법상 촬영물 유포 혐의로 구속됐다. 최씨는 2015년 여름 고 정아무개 실장이 운영한 합정 P스튜디오에서 양씨 노출사진을 촬영해 유출했고 촬영 도중 양씨의 성기를 만진 혐의를 산다. 같은 혐의의 정 실장은 지난 7월 투신해 사망했다.

이날 피고인 신문 대부분은 양씨의 카카오톡 기록과 문자 메시지였다. 양씨가 정 실장에게 ‘일이 있느냐’고 연락하거나 요구한 기록이다. 피고측 변호인은 “왜 16회나 촬영회를 갔느냐”, “왜 강력히 대응하지 않았느냐”거나 “왜 먼저 일을 요구했느냐”며 피해자답지 않다고 물었다.

양씨는 “카카오톡은 정실장과 내가 나눈 모든 대화가 아니라 일부라는 점을 알아달라. 그 사이에 통화건 뭐건 다른 대화도 많이 오고갔다”고 했다.

당시 양씨는 22살 대학생이었다. 대학 등록금 350만원, 집세 150만원 등 한 학기 학비를 최소 500만원은 벌어야 했다. 집이 어려워 자기 생활비와 집안 살림도 함께 맡아야 했다. 호프집 서빙 아르바이트로는 도저히 기간 내 학비를 벌 수 없었던 양씨는 2015년 여름 구인 사이트에서 피팅모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정 실장의 P스튜디오 공고였다.

일을 시작한 날 바로 강제 노출촬영을 당했다. 양씨는 노출 수위를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정 실장이 주는 원피스와 속옷을 그대로 입었다. 성기가 노출되는 속옷이었으나 정 실장은 ‘속옷 착용 티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20~30분 통상적인 촬영이 진행되던 중 정 실장은 치마를 올리라고 요구했다.

▲ '합정 P스튜디오 비공개촬영회 성폭력' 사건 피해자 최초 폭로 영상. 사진=양예원씨 페이스북
▲ '합정 P스튜디오 비공개촬영회 성폭력' 사건 피해자 최초 폭로 영상. 사진=양예원씨 페이스북

양씨는 당시를 ‘공포’로 기억했다. 싫은 티를 낸 양씨에게 정씨는 ‘저 사람들은 돈내고 예약하고 온건데, 어떻게 할거냐’고 압박했다. 한 명일 줄 알았던 사진 작가는 예닐곱은 됐다. 여성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검사는 “첫날 피해자의 음부가 이미 촬영됐다. 첫날 사진만 유출되도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유출을 막는게 가장 중요하니 그 이후에 (정 실장과) 연락 여부는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유출이 가장 두려웠다. 정 실장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항의했지만 강력하겐 못했다”며 “매번 가슴, 음부를 노출하는 촬영은 아니었다. ‘못하겠다’ ‘이건 아니다’라 하면 정 실장은 노출이 적은 촬영회로 잡아준다며 회유했다. 당시엔 가슴, 음부만 안 보여도 괜찮겠다 여겼다”고 밝혔다.

촬영으로 번 돈도 결국 모자랐다. 양씨는 2학기 학비·생활비를 충분히 모으지 못해 휴학했다. 양씨가 ‘일 더 없을까요’라 카톡을 보낸 시점은 8월말 학비 지불 마감일이 임박한 때다. 양씨는 내년도 1학기 학비를 벌려고 잠실의 옷가게와 일산의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했다. 그래도 돈이 부족했던 양씨는 2016년 2월 정 실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양씨는 증언 중 “하루 12시간을 주 5일 한 달 간 일해도 140~160만원 번다. 김밥 한 줄만 식사로 먹어도 차비, 식비 등으로 100만원이 채 안남는다. 집에도 돈을 주면 4~5개월 간 500만원 넘게 모으기란 정말 어렵다. 22~23살 사회생활 안 해본, 아무 것도 모르는 애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느냐’는 판사 물음에 양씨는 “나는 배우지망생이었다. 사실 지금도 미련이 남을 정도로 너무 하고 싶다”며 운을 떼며 눈물을 흘렸다. 양씨는 “22살에 이력서 한 번 잘못 넣은 걸로 어린 마음에 신고할 생각도 못한 채 가족과 친구가 알면 어쩌나, 유출되면 어쩌나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양씨는 “정말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예원이를 조금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25살밖에 안됐지만 여자로서 인생을 포기할만큼 전국민으로부터 ‘살인자·거짓말쟁이·창녀·꽃뱀’ 말을 들으며 어떻게 죽을지, 오늘 죽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양씨는 “앞으로 행복하게, 대단하게 살겠다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평범한 20대 여성으로 살고 싶은 게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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