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10일자 지면에서 ‘지상파 방송4사, 인사·징계도 노조와 사전 협의’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KBS·MBC·SBS·EBS 지상파4사와 전국언론노조가 지난 9월3일 체결한 산별협약을 두고 논란의 소지가 큰 조항들이 다수 포함됐다며 “노조가 보도·편성뿐 아니라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의 입을 빌려 “공정 방송 실현이라는 명목으로 인사·징계권에 편성·보도권까지 사실상 노조에 내줬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특히 경영진 출석 및 자료 제출 요구, ‘공정 방송 저해 구성원’에 대한 징계 심의 요구 조항의 경우, 사용자는 이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들어갔다”고 우려했다.

▲ 조선일보 10월10일자 기사.
▲ 조선일보 10월10일자 기사.
조선일보 노조가 2017년 11월6~8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지면기사 논조와 대조적이다. 당시 설문 응답자의 90%는 “상명하복 관계를 완화하기 위해 차장대우 포함 평기자의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이를 위한 방법으로 ‘다면평가제’를 1순위로 꼽았다. 다면평가제는 평기자가 팀장·데스크·부장 등을 평가하는 제도다. 당시 응답자의 76%가 다면평가제가 ‘득이 더 많다’고 답했다. 다면평가제 일환인 ‘편집국장 신임투표제’도 응답자의 40%가 ‘득이 더 크다’고 답했으며 8%가 ‘부작용이 없다’고 답했다. ‘부작용이 크다’는 응답자는 37%였다.

앞서 조선일보 노조는 2017년 10월23일자 노보에서 이 무렵 SBS노사가 방송사 최초로 사장을 비롯해 방송 편성 시사교양 보도 부문 최고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실시에 합의한 사실을 두고 “언론의 공정성을 높이는 또 다른 방안을 제시한 셈”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이는 앞서 조선일보가 “노조가 보도·편성뿐 아니라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우려한 것과 상반되는 대목이다.

당시 조선일보 노조는 “언론 종사자들의 견제 장치가 더해진다면 더욱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평가한 뒤 “우리도 할 수 있다”며 편집국장 신임투표제의 필요성을 여론화시키기도 했다. 조선일보 대다수 평기자가 가입돼있는 노동조합의 의견이 이러한데, 정작 지면기사에선 이를 부정하는 의견이 나온 셈이어서 언론사 인사권을 쥐고 있는 방상훈 사장 이하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지면사유화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조선일보 사옥.
▲ 조선일보 사옥.
전국언론노조는 10일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부정하는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의 입장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기자는 노동3권을 부정하기 전에 자사 노조(조선일보노조)에 사실관계부터 확인하라”고 비판했으며 조선일보가 보도‧제작 편성 책임자의 임명‧평가 등에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게 한 것을, 마치 ‘노조와 사전 협의’하도록 한 것처럼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조선일보 경영진을 향해 “TV조선 등 종편을 포함한 방송사업자 전체에 노사동수편성위원회를 도입하자는 논의에 반대하고, 노사합의로 시청자위원회 위원 추천위를 구성하라는 방통위 권고가 맘에 들지 않는다하여 방송 정상화, 공정성 실현이라는 시대정신까지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며 “특수 관계자들을 위해 지면을 사유화하지는 말자”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노조가 지난 1일 발행한 노보 하단기사 제목은 “언론사 사유화와 세습, 언론자유의 적”이었다. 조선 노조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주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장기 집권하며 세습까지 하는데 언론자유가 살아있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직장에서 도태될 자유를 각오하지 않는 한 사주 심기를 거스르는 기자는 나오기 힘들다. 노조라는 공적 조직마저 성역을 침범했다고 ‘패싱’ 당하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경영진을 비판했다.

노조는 “올해 사측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별로 없지만 분명하게 밝힌 것은 있다”며 “조선일보 안에 성역은 있고 언론자유는 없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내부에선 이처럼 조선일보 지면과 노보가 상반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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