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산선)는 1958년에 출발했다. 영등포 산선은 1977년 영등포구 당산동에 ‘노동교회’를 세우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산선은 지금까지 YH무역, 원풍모방, 대일화학, 콘트롤데이타,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 소외된 노동을 돌보는 큰 울타리다. 한국 현대사는 산선에 큰 빚을 졌다.

그러나 산선만큼 한국 언론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린 곳도 드물다.

MBC는 1979년 8월14일 저녁 보도특집에 어용이었던 김영태 섬유노조 위원장을 불러내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은 순수한 선교활동이 아니며 행동자체는 공산당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MBC 카메라 앞에서 도시산업선교회에 가입한 여공들이 “젖가슴에 면도칼을 넣고 다니며 필요할 때는 자해행위를 하여 근로자들을 흥분시키는 등 수법이 공산당과 똑같다”고 했다.

MBC에 이어 경향신문은 1979년 8월18일자 3면에 ‘도시산업선교회의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계급투쟁 고취, 배후엔 불순세력이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MBC와 경향신문은 한 회사였다. 물론 소유주는 박정희 자신이었다. 1979년 8월11일 새벽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마포 신민당사에서 강제해산 당한지 사흘 만에 유신정권은 MBC를 들러리 세워 이런 공작정치를 벌였다.

당시 공화당과 유정회는 1979년 8월15일 “도시산업선교회가 노사 분규의 배후 세력”이라고 못 박았다. 다음 날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실태를 철저히 조사, 파악하여 보고하라”고 김치열 법무부 장관한테 지시했다.

▲ 영등포 산업선교회 이근복 목사 등 23명의 기독교 목회자들이 1987년 9월18일 오전 전경련 회장실을 5시간 동안 점거해 노동운동 탄압을 규탄하고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사복경찰에 연행돼 끌려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1987년 9월19일자
▲ 영등포 산업선교회 이근복 목사 등 23명의 기독교 목회자들이 1987년 9월18일 오전 전경련 회장실을 5시간 동안 점거해 노동운동 탄압을 규탄하고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사복경찰에 연행돼 끌려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1987년 9월19일자

박정희의 마지막 선전도구였던 언론은 3년 뒤 전두환의 선전도구가 됐다. 경향신문은 1982년 4월24일 6차례의 기획시리즈 기사로 석 달 내내 도시산업선교회를 난도질한다. 경향신문은 마지막 하나 남았던 민주노조 원풍모방노조를 깨기 위해서 또다시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 오면 도산(倒産)한다’고 외쳤다. 언론은 산선을 꼭 ‘도산’이라고 불렀다.

MBC는 1982년 7월19일 ‘충격보고, 나는 이렇게 의식화교육을 받았다’와 7월28일 ‘기업과 도산(도시산업선교회)과 도산(倒産)’이란 제목의 특집으로 도시산업선교회와 노동자를 좌익 용공으로 몰아갔다. MBC는 도산과 노동자를 좌익 게릴라와 연결시키는 비약은 물론이고 화면마다 붉은 색을 입히고 음산한 음악을 깔아 왜곡보도를 자행했다. 한참 뒤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당시의 마녀사냥에 사과했다.

지난 8일 법원이 명성교회가 제기한 MBC PD수첩의 ‘세습·비자금 의혹’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9일 교회 세습을 다룬 방송이 가능했다.

▲ 영등포 산업선교회 앞마당에 놓인 기념비엔 ‘노동선교의 요람, 민주화운동 사적지’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 영등포 산업선교회 앞마당에 놓인 기념비엔 ‘노동선교의 요람, 민주화운동 사적지’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명성교회의 세습반대 운동은 이미 교계에서 먼저 불 붙었다. 예장통합총회 소속 목회자 1천여명이 지난달 목회자대회와 기도회를 열어 교회 세습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목회자대회에 실무위원장을 맡은 이근복 목사는 80년대를 오롯이 영등포 산선에서 보냈다. 1983년 전도사로 영등포 산선 총무로 부임해 1990년 연말까지 꼬박 7년간 굳은 일을 도맡았다. 영등포 산선은 1986년 공권력의 무차별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됐고, 1987년 9월18일엔 노동운동 탄압을 규탄하고 구속노동자 석방 기도회를 하려던 이 목사 등 목회자들이 연행됐다. 1989년 마포구 맞벌이 부부의 어린 두 자녀가 불 타 숨지자 이들의 추모행사를 챙긴 것도 영등포 산선이 운영하는 성문밖교회였다.

오는 11월3일 영등포 산선이 ‘다시 길을 묻다’는 주제로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부끄러움을 아는 언론인이라면 그 행사에 조용히 참석해 참회해야 한다. 카메라와 펜은 잠시 내려놓고.

▲ 영등포 산업선교회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는 오는 11월3일 열린다.
▲ 영등포 산업선교회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는 오는 11월3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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