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강의를 들은 적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1998년 탈북한 뒤 2002년 남한에 입국했다. 2003년 동아일보 공채에 합격했다. 지금도 동아일보 현직기자로 필치를 뽐내고 있다.

‘탈북 기자’ 주성하는 그날 강의에서 북한이 핵을 쥐고 버티면 오래 견딜 수 없고 통제력을 잃지 않는 선에서 경제성장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 봤다. 그는 폭압적 북한체제에 비판적이면서도 북한 주민에는 따뜻한 시선을 지녔고 한반도 평화에도 기대감을 가졌던 걸로 난 기억한다. 

▲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사진=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사진=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북한을 바라볼 때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 ‘팩트’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진보연하며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것에도 그는 비판적이다. 동아일보 내부가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이야기에선 매체 자부심도 느껴졌다. 동아일보가 남북문제에선 조선일보와 다른 논조를 보이는 데에 주성하 기자 영향도 있을 것이다.

지난달 그가 책을 냈다.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급변하는 평양의 모습, 평양 시민의 일상과 그늘을 그려냈다. 강의 때 더 듣지 못했던 ‘평양의 자본주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머리말에서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시민이 전한 내용이며 그들의 감수를 거쳤다. 평양 시민 스스로가 작성한 평양 심층 보고서”라고 자평했다.

북한 시장경제는 이른바 ‘장마당 세대’가 주도한다. 500개에 이르는 시장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거래 공간이 있다. 북한 주민 100만 명이 장마당 경제에 종사하는데 가족까지 포함하면 북한 주민 3분의 1이상이 수입 3분의 2 이상을 장마당에서 얻고 있다.

이 장마당 경제를 조명하는 책들은 최근 적지 않으나 주 기자 책은 유독 디테일하다. 특히 책에서 설명하는 평양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서울 강남 저리가라’다. 

2014년 5월 평양에서 23층짜리 재건축 아파트가 붕괴해 300명 이상 사망한 사건은 1970년대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닮은 ‘인재’였다. 아파트 건설에 들어간 철근과 시멘트가 정량 품질이 아닌 탓이었다. 무보수 노동으로 투입됐던 군인 등 건설 인부들은 시멘트, 철근, 모래 같은 자재를 빼돌려 배를 채웠다.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지 못한 결과다.

부동산은 물론이거니와 호화 상점에 쌓인 명품, 룸살롱 등 술 문화와 소비, 패션, 교육, 의료, 연애와 결혼까지 북한 사회 각 부문에 자본주의는 깊게 침투해 있다. 식당에서 팁을 주면 ‘접대원 동무’들의 봉사성이 더 올라가고, 평양에서도 ‘치맥(치킨과 맥주) 배달’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다니….

▲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지난달 펴낸 책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출판사 북돋움.
▲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지난달 펴낸 책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출판사 북돋움.
“반세기 전 평양에서 들끓었던 사회주의 혁명의 열망은 3대 권력 세습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개인의 욕망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평양은 더 이상 혁명의 수도가 아니다. 부자가 되려는 꿈이 지배하는 ‘욕망의 수도’일 뿐이다. 혁명도, 통제도, 순응도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P.67)

자본주의 욕망이 가득 찼지만 북한은 이론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다. 경쟁 시스템 대신 뇌물이 수요와 공급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북한 주민은 평균적으로 가계 소득의 20% 정도를 뇌물로 바친다. 직업과 교육, 나아가 권력(당 간부)까지 뇌물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저자 설명이다. 

다만 최고위 권력층은 예외다. 핵심 중앙당 간부들은 뇌물을 “쓸 필요도 없고 쓸 곳도 없다. 권력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뇌물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장차 남북 교류가 이뤄지고 누군가 북한에서 사업을 할 계획이 있다면 주 기자 책은 북한 속살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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