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미디어 산업과 노동이기 때문인지 관련 주제의 토론회에 자주 참석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갑자기 불거진 이슈를 다루거나 시급한 대책을 촉구하는 토론회는 여간 부담이 아니다. 토론이라는 명칭과 달리 이슈 당사자의 요구를 공론화하거나 정부부처와 해당 상임위 의원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표나 토론이 아니라 관계당국으로부터 분명한 입장과 대책을 확인해야 하는 사회자는 그다지 앉고 싶지 않은 자리다. 그런데 지난 2일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요청으로 “방송스태프 비정규직 노동자 국회증언대회” 토론회의 사회를 맡게 됐다. 부담스러운 사회자의 역할을 무난하게 넘기는 요령은 10명이 넘는 참석자 발언시간의 적절한 배분이라는 생각에 순수한 의사진행발언만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참석했던 고용노동부 과장의 발언이 갑작스런 노조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노동자다

당일 토론회의 쟁점 중 하나였던 드라마 제작사와 조명·음향 등 제작 스태프 감독 간의 계약 관계 때문이었다. 스태프 감독을 제작사가 고용한 노동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해당 분야 스태프들을 고용하여 제작 업무를 위탁받은 사용자, 즉 사업자로 볼 것인지의 문제였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담당 과장은 근래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입장, 즉 스태프 감독은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제작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사업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토론회 객석에 앉아 있던 감독들의 반발은 거셌다. 시간 배분만 잘 하면 된다는 사회자의 역할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 감독은 “노동부 과장님은 제발 현장에 와 보시라. 촬영 일정도 조정할 수 없고 PD의 한 마디에 휘둘리는 사업자가 어디있는가. 우리는 노동자다”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카메라, 음향, 조명 등 드라마 제작현장 업무들은 대개 장비 명칭을 기준으로 분배된다. 과거 제작사는 이런 장비의 임대료로 스태프들에게 보수를 지급했고, 이를 해당 업무의 감독을 사용자로 하는 사업자 간 계약으로 바꾼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속칭 ‘턴키계약’이 그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턴키계약은 효율적이다. 카메라, 조명, 음향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 노동자들과 복잡한 고용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그만큼 제작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고나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을 고용하고 일을 분담하는 감독의 입장은 정반대다. 자신이 고용한 스태프들에게 내리는 작업지시는 자기 판단이 아니라 제작사 PD의 결정에 따라야 하고, 무리한 촬영 일정에서 벌어지는 사고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촬영 완료 뿐 아니라 방송 일정에 대한 협의조차 할 수 없는 감독은 ‘관리자’가 아니라 팀장급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이 때문이다. 감독의 발언에 대한 노동부 과장의 답변은 동어반복이었고 객석의 웅성거림은 더해갔다. 시계의 초침만을 보며 정리할 말만을 생각하던 내게 갑자기 한 달 전 기억이 떠올랐다.

너희는 사업자다

대학의 시간강사 생활을 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일주일에 한 두 번 가서 길어야 세 시간의 강의를 하고 오는 강사에게 학과의 개강총회나 여타 학과행사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개강총회도 그렇지만 뒤풀이에서 듣는 학생들의 이런저런 불만은 강사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자주 보는 학생들과의 친분으로 자리를 채우기는 하지만 칭찬과 위로 이외의 할 말은 많지 않다. 그런데 지난 9월 우연히 개강총회에 갔다가 뒤풀이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강의실 칠판이 아닌 술잔을 놓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불만을 듣게 됐다. 다름 아닌 아르바이트 애기였다. 방송영상 전공인데다 제작 실습을 자주하는 학생들은 언제부터인가 과외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아닌 다양한 포맷과 플랫폼의 영상제작 일을 하고 있었다. 휴학 기간에 하거나 때로는 수업을 듣는 학기 중에 시간을 쪼개 밤샘 작업을 한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전공과 관련이 있고 제작현장을 미리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인지 이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애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학생들의 고충을 듣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이 뒤통수를 때렸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채용할 때도 쓰는 근로계약서는 본적도 없다는 말이었다. 행여 쓰더라도 내용은 보지도 않는단다. 더욱 놀란 것은 어떤 학생들은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계약서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사정을 듣고 보니 말이 용역이지 사실상 부실하기 짝이 없는 도급계약이었다.

비단 방송영상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예술 관련 전공 대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콘텐츠의 제작이나 공연을 할 때 ‘계약’할 자격조차 없는 ‘학생’으로 취급된다. 인맥을 통한 몇 마디 말로 일을 구하는 오랜 관행도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최근 노동권 강화를 내세운 정부정책으로 사업자들에게 요구되는 근로계약이 이들에게는 부실한 거래계약으로 둔갑한다는데 있다. 용역계약이든 도급계약이든 자신의 장비와 실력을 제공하면서 학생들은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취급받고 있었다. 제대로 대가만 받으면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생 처음 건네받는 계약서 문구에서 노동자라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권리가 아니라 상품과 돈에 대한 조건만을 접하는 학생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함께 일할 동기와 후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자신을 고용한 회사에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보다 개인 사업자로의 협상의 기술만을 배우는 것은 아닌가.

▲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나는 노동자인가

전혀 다른 시간과 장소인 국회 토론회와 대학가 뒤풀이 자리는 이렇게 이어졌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이며 고용주라는 법적 지위의 부여는 제작현장 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무관심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란 여전히 요원하다. 수 많은 방송산업예비군을 배출하는 대학에서 노동이 아닌 콘텐츠와 산업만을 가르칠 때, 그날 들었던 “우리는 노동자”라는 한 감독의 외침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퍼스트, 소셜 미디어, 모바일 플랫폼, MCN 등등 새로운 미디어와 시장을 전망하고 달라진 기술환경에서 제작 능력의 습득만을 이야기하는 대학이야말로 사업자의 양성소가 아닐지. 벌써 10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중간시험을 과제로 대체했으니 한 주 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러면 안 되겠지만, 남은 7주의 강의 계획서를 수정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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