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실거래가격의 약 70%인 반면 고가 단독주택이나 상가 등의 공시가격은 실거래가격의 40~50%밖에 되지 않아 오히려 부유층이 세금혜택을 더 많이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겠다지만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아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이 ‘공시가격을 올리면 오히려 서민층이 기초연금 등 복지혜택이 줄 수 있다’며 부작용을 강조하는 보도에, 부작용이 있다면 그 부작용을 막는 감면제도를 논의해야지 부작용 때문에 불공평한 공시가격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8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불평등사회경제조사연구포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이 공동주최한 ‘불공평한 공시가격 현실화,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 토론회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해법을 다뤘다.

▲ 8일 서울 국회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불평등사회경제조사연구포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이 공동주최한 ‘불공평한 공시가격 현실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8일 서울 국회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불평등사회경제조사연구포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이 공동주최한 ‘불공평한 공시가격 현실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정수연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실제 시장에서 관찰되는 실거래가격보다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나왔고, 특히 실거래반영율이 고가 주택은 더 낮고, 저가 주택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며 “재벌회장의 단독주택은 인근의 실거래가격들과 비교해보니 50% 수준이고, 서민들 주택인 아파트는 시세반영률이 70%여서 불평등하다”고 설명했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매년 전국의 대표적인 토지와 건물을 조사해 발표하는 부동산 가격을 말하는데, 땅에 대한 공시가격은 공시지가, 건물에 대한 것은 공시가격이라고 한다. 공시가격은 과세 기준가인만큼 보수적으로 책정돼왔다. 문제는 재벌들이 보유한 주택의 공시가격이 시세의 50%정도라는 것이다. 서민 아파트는 공시가격이 시세의 70%이상인 것에 비해 재벌이 보유한 주택의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턱없이 낮아, 보유세 뿐 아니라 상속세, 증여세 등 특혜를 더 챙긴다. 고가 주택의 경우 시세가 없다는 이유로 공시가격으로 증여세 등이 책정되고 있다. 

실제로 경실련의 5월 발표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한남동 주택의 시세는 498억원으로 2018년 공시가격(261억)이 시세의 52%에 불과했다. 이태원동의 이건희 회장 주택도 시세는 396억원으로 추정되지만 공시가격은 235억원에 머물렀다.

▲ 출처=경실련 홈페이지
▲ 출처=경실련 홈페이지
정수연 교수는 “고가의 부동산의 경우, 거래가 드물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고 가격산정이 어려워진다. 때문에 더 보수적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반면 저가주택은 비슷한 거래가 많아서 가격산정이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의원 역시 “실거래가를 기반으로 공시가격을 정하니 거래가 빈번한 서민주택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상황”이라며 “공시지가와 공시가격을 투명한 기준을 가지고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국토부가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성달 팀장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집값 상승과 불로소득 환수에 대한 국민여론이 고조되자 공시가격 현실화를 다시 주장하고 있고, 국토부 관행혁신위원회도 공시가격 현실화 입장이 나왔지만 구체적 방안으로 논의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모든 부동산 공시가격에 시세반영률 80%를 적용하고 국회는 한국감정원 내부규정에 의해 공시가격이 왜곡되지 않도록 개정안을 마련하고 현재 공시가격이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 조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지난 9.13 부동산 대책을 내놨을 때에도 “재벌기업이나 고급단독주택을 소유한 부동산 부자들은 2005년 도입 이후 십년 넘게 지방의 서민아파트 보유자들보다 보유세를 덜 내왔다”는 문제를 지적하며 “이런 문제를 정부도 알면서도 부동산 대책에는 ‘공시가격 점진적 현실화’로만 언급해 공시가격을 개선할 의지도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토론회 내내 같은 지적이 이어졌으나 한국감정원과 국토교통부는 ‘조세 저항 때문에 쉽지않다’는 해명하고, 여전히 구체적 공시가격 관련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특히 홍성훈 한국감정원 공시기획처장은 조선일보의 ‘전재산 3억 집 70代, 공시가격 20% 오르면 기초연금 탈락’이라는 기사를 언급하며 “공시가격은 60여개의 세금의 기준이 되기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며 “조선일보의 기사 등을 보면서 이런 고려가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는 만약 공시가격이 오른다면 오히려 서민들의 소득인정액이 올라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다만 홍 기획처장은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고가 부동산에 대한 지적은 따갑게 받아들인다”고도 말했다.

▲ 10월 4일자 조선일보 보도.
▲ 10월 4일자 조선일보 보도.
한정희 국토교통부 부동산평가과장은 “2005년 공시제도 도입 당시에도 언론의 주된 분위기는 ‘세금폭탄’이었고, 관련 부처에 민원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서 콜센터를 따로 둘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 과장은 “정부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현실에 기반해서 합리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과장은 “물론 (공시가격 책정이) 개별마다 달라서 이런 부분은 오차가 줄어드는 것이 국민적 요구라고 생각하고, 적극적 의지가 있지만 일률적이거나 획일적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경실련의 김성달 팀장은 토론회가 끝난후 미디어오늘에 한국감정원과 국토부의 발언에 비판 의견을 더했다. 김 팀장은 “조선일보 보도의 경우 조선일보 역시 코리아나 호텔 등을 소유하고 있고, 이런 부동산에 공시가격이 낮게 잡혀 특혜를 얻고 있으므로 이해당사자라고 본다”며 “만약 조선일보의 논리처럼 서민이 오히려 세금을 많이 내게 된다면 이를 다시 조정하는 부처별 협의를 열어 조정해야 할 문제고 이 때문에 공시가격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국토부 발언에도 “오늘 토론회에서 국토부 측은 막연하게 ‘의지가 있다’고만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며 “올초에도 이와 비슷한 토론회 자리가 있었는데 국토부가 당시에 이야기했던 것에서 전혀 진전이 없는 이야기를 또다시 내놨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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