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와 현대‧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 간 합의가 타결되면서 불법파견 해결을 위한 노사 직접 교섭의 길이 열렸다. 문제가 공식 제기된 지 14년 만이다. 노동부는 다음 주 내 노사 교섭을 진행키로 하며 비정규직과 원청 간 직접 교섭을 열 수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7일 합의타결을 알리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와 원청 노·사를 중재해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이뤘고 △비정규직 지회와 원청 노·사 모두 대등한 지위로 교섭하며 △필요에 따라 원청과 비정규직 간 직접 교섭을 실시하고 △노·사 교섭이 다음 주 내 진행되도록 적극 지원한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지회가 서울고용노동청 점거농성에 들어간지 18일, 집단 단식에 들어간지 16일 만이다.

▲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공동투쟁위원회는 7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4층 농성장에서 고용노동부와 불법파견 협의 타결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공동투쟁위원회는 7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4층 농성장에서 고용노동부와 불법파견 협의 타결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공동투쟁위원회는 7일 오후 농성장에서 회견을 열고 “모든 일은 결국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며 “직접교섭을 통해 2018년을 14년 간 지속돼 온 불법파견 문제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해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14년 만에 해결 실마리가 마련됐을 뿐 불법파견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 안됐다. 노동부가 약속대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는지, 처벌도 실제로 이행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불법파견 공동정범’인 검찰엔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왜 14년이나 걸렸나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문제는 2004년부터 공식 확인됐지만 고용노동부가 직접 교섭 중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노동부는 2004년 9234개 공정에 달하는 현대차 사내하청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대법원이 2010년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사실을 확정한 지도 8년이 지났다. 이후 2014년 9월 18·19·25일 세 차례에 걸쳐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1759명이 정규직 노동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들은 2017년 2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비정규직 지회는 문제가 장기화된 데 △검찰 △고용노동부 △현대·기아차 원청에 책임을 물었다. 검찰은 2010년 8월 현대차 불법파견 고소장을, 2015년 10월 기아차 불법파견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았다.

특히 현대차 건은 고용노동부가 일부 기소 의견을 냈으나 담당 검사의 수사 지휘를 거쳐 불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2015년 기아차 고소건 경우,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지금까지 조사받지 않았다. 지회는 검찰에 대한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원회는 지난 8월1일 노동부와 검찰이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수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고 부당한 수사를 했다고 발표했다. 지회는 “노동부는 행정개혁위 권고사항을 성실히 이행한다고 약속해놓고 두 달 가까이 현대기아차에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수억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회견 중 눈물을 흘렸다. 비정규직 지회는 지난 8월30일 법원 판결 및 행정개혁위 권고 이행을 요구하는 전면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공장 내 농성에 돌입한 김 지회장은 원청 관리자 투입을 저지하기 위해 목에 밧줄을 묶기도 했다.

▲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이 7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4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이 7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4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14년 간의 정규직화 투쟁 동안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중 3명이 사망했다. 36명은 불법점거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1명을 제외하고 모두 구속됐다. 비정규직 노동자 196명이 해고됐고 연이은 회사 측 손해배상 소송으로 노조엔 247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이 청구된 상태다.

김 지회장은 “오늘은 윤주형 열사의 생일”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화성공장 노동자였던 윤주형씨는 정규직화 투쟁 중 부당해고를 당해 2013년 1월2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류기혁씨는 2005년 9월4일, 아산공장의 박정식씨는 2013년 7월15일 같은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비정규직 지회 “판결 취지대로 정규직화”

기아차는 지난 9월 원청 기아자동차 노조와 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1300여 명을 정규직 전환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지회는 해당 채용은 법원 판결 취지에 위배된다며 파업 및 고용노동부 점거농성에 나섰다.

기아차 원청 노사는 불법파견 소송 취하를 ‘정규직 특별채용’ 전제로 뒀다. 채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타 공정으로 전보됐고 정규직 직원이 비워진 자리를 채웠다. 비정규직 지회는 정규직화 논의 교섭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지회는 “이 경우 체불임금과 근속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 법원 판결대로 일했던 자리에서 그대로 정규직이 되는게 아니라, 정규직이 기피하는 공정으로 강제로 쫓겨나야 한다”고 반발해왔다.

지회는 이와 관련 “사실상 현대·기아차만 면죄부를 받는다. 정몽구 회장은 법원판결에 따라 지급해야 할 체불임금과 근속에 따른 각종 임금 수천 억 원을 떼먹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합의 타결에 따라 비정규직 지회는 동등한 지위로 노사 교섭에 참여할 수 있다. 지회는 “다음 주에 시작될 직접 교섭을 통해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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