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한 정부차원 대응을 주문하고 이틀 뒤인 10월4일, 한국경제 주필 출신이자 2017년 탄핵 당시 전직대통령 박근혜씨를 단독 인터뷰했던 정규재씨는 구독자수 26만여 명을 보유한 유튜브채널 펜앤드마이크를 통해 ‘언론인들에게 드리는 호소’란 제목의 영상을 내보냈다. 영상의 한 대목은 이러했다.

“…저질 삼류 여혐 보도, 온갖 쓰레기 보도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기자는 삼류소설가의 다른 이름이다. 기자들 지가 정치인이 됐다. 삼류 정치인. 대한민국 기자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무식한 주제에 지 마음대로 떠든다. 한국에서 오바마가 한국기자에게 질문 받겠다고 할 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우보수 성향 유튜브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정규재씨의 주장은 과격해보이지만 오바마와 관련된 사실관계 하나를 끼워 넣음으로써 기성언론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그럴듯한 주장이 되어버렸다.

구독자수 15만여 명을 보유한 유튜브채널 조갑제TV 진행자인 월간조선 전 편집장 조갑제씨는 박근혜 탄핵반대집회 당시 가장 앞장서서 조선일보를 비판했다. 조씨는 “기성언론은 조작과 선동의 공범집단”이라고 말했으며 “조중동은 한 번도 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수감된 변희재씨 또한 당시 “조선일보는 중앙일보에 버금가는 탄핵의 1등 공신이었고 MBC를 제외한 공영언론은 모두 탄핵세력에 가세했다”며 제도언론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들은 끝까지 박근혜씨 탄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15~20%의 국민을 위해 기성 언론을 싸잡아 부정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동시에 그들은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책 ‘저널리즘의 지형’ 공동저자인 안수찬 한겨레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가짜뉴스 논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왜곡보도는 외국에는 없는 개념이다. 한국적 용어이기 때문이다. 왜곡보도는 기성 언론의 뉴스 가운데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허위정보를 뜻한다. ‘가짜뉴스’의 원형질이라 할 만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가짜뉴스담론’이 한국에선 전통 언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늬들은 가짜뉴스 안 쓰냐는 비난이 먹힌다.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이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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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우리는 수많은 왜곡보도와 함께 살아왔다. 한국은 경제수준에 비해 여전히 언론의 신뢰도가 낮다. 안수찬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에는 ‘진짜뉴스’의 경험적/역사적 모델이 없거나 희귀”하며, 이 때문에 우리는 영미권 선진국에 비해 가짜뉴스를 정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있다.

때문에 언론계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낙연 총리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진짜뉴스의 생산이며, 지겨운 주장이지만 저널리즘의 복원이다. 가짜뉴스의 확산과 극우보수 유튜브채널의 성장 배경에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이 있다면, 결국 기성언론이 달라지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방안이다.

JTBC ‘뉴스룸’은 최근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유튜브채널에서 등장하는 가짜뉴스와 각종 의혹을 검증하기 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은 10월3일자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최근의 가짜뉴스 논란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언론을 맹신하지 않습니다. 언론은 아니지만 마치 언론 같은 매체들이 넘쳐나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소문은 가득하니 굳이 전통적인 언론매체에 기대지 않아도 될뿐더러 때로는 그 전통적 언론매체들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마음껏 불신할 수도 있는 세상. 그래서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각자의 세상. ‘가짜뉴스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누군가의 질문에 워터게이트 사건을 탐사보도 했던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말이 아닌 기사로 우리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대체 어느 세월에…하는 한숨부터 나오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그의 답변이었습니다.”

손 사장의 진단은 정확하지만 동시에 지난하고 어려운 싸움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 칼럼에서 “증오의 확대를 노리는 세력은 명백한 허위주장도 쓸모 있다고 사용하는데, 주장의 허위성을 밝힌다고 해도 증오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허위사실을 밝힌 편은 공들여 작은 진실을 얻고도 여론에서 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가짜뉴스에 맞서는 저널리즘은 그 어느 때보다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겨레가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는 탐사보도 이후 “한겨레야말로 가짜뉴스”라며 공격받을 때 그저 남의 일처럼 넘겨선 안 된다는 의미다. 같이 맞서지 않으면 같이 죽는다. 몇 주 전 자신을 비판하는 대다수 언론을 가짜뉴스로 규정한 트럼프에 맞서 미국언론들이 ‘사설 연대’에 나섰던 장면은 상징적이다.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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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프랑스에선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한 ‘크로스체크 프로젝트’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당 프로젝트는 비영리단체 ‘퍼스트 드래프트’의 주도로 33개 언론사에 소속된 100명 이상의 언론인들이 연합해 온라인에서 떠도는 루머와 각종 주장, 조작된 이미지나 동영상을 검증했다. 노르웨이에서도 공영방송과 주요 일간지를 중심으로 ‘팩티스크’라는 펙트체크 연합체가 탄생했다. 시사점이 적지 않다.

저널리즘은 진짜뉴스의 진지를 구축하는 가운데 유튜브·페이스북 등 가짜뉴스가 주로 유통되는 플랫폼을 압박해야 한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갔고, 유튜브는 지난해 7월 가짜뉴스 퇴치를 위해 2500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애플·유튜브는 지난 8월 미국의 극우 인사로 혐오표현을 지속해온 알렉스 존스의 콘텐츠와 그가 만든 극우매체 ‘인포워스’ 콘텐츠를 검열·삭제했다. 언론의 끝없는 감시와 비판이 없다면 불가능한 변화였다.

또한 저널리즘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 ‘노드베스트차이퉁’은 2016년 5월25일 창가에 매달려 떨어질 위기에 처한 흑인 아이를 구한 환경미화원들의 사연을 보도했는데, 이후 자사 페이스북에 “환경미화원이 그 아이를 쓰레기처럼 생각하고 처리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댓글이 달리자 발견 직후 삭제하고 작성자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법원은 2017년 8월 국민선동죄로 작성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무엇보다 언론은 가짜뉴스와 관련한 정부차원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대응을 위해 당장 가짜뉴스를 정의하려 할 것이다. 그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다. 박근혜정부가 가짜뉴스를 정의하려 했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와 다르다. 하지만 어느 정부든, 가짜뉴스를 처벌하기 위해 모든 표현물을 옭아맬 수 있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현행법으로도 불법 게시물은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

때문에 언론은 일명 ‘가짜뉴스처벌법’으로 불리는 독일의 ‘소셜네트워크에서 법집행 개선을 위한 법’에 대한 긍정적 포장도 멈춰야 한다. 이 법은 독일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강한 비판 속에 2017년 10월1일 등장했다. 이 법 제2조 ‘보고 의무’ 조항에 따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업자는 불법 게시물 신고 및 불만 접수 처리 결과에 대해 6개월마다 독일어로 된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해야 한다. 해당 법 규정을 위반할 경우 서비스 사업자에게 최대 500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해당 법안을 가리켜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용자 불만처리를 좀 더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게 요점”이라고 전한 뒤 “이 법은 다국적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게 어떤 내용물이 불법 게시물이고 어떤 건 아닌지 판단해서 규제할 권한을 주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그는 이 법을 베낀 나라들이 러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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