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뜨거운 감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일 ‘가짜뉴스 대응’을 촉구한 데 이어 3일 더불어민주당이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고 자유한국당이 반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언론은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가짜뉴스 규제에 대한 보도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해외 규제의 성격을 잘못 전하고 숙의가 필요한 내용을 단순화하거나 비교 대상인 한국의 규제 상황을 언급하지 않은 보도가 적지 않았다. 가짜뉴스 논란과 관련해 시민들의 합리적 판단을 돕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 전달은 물론 충분한 맥락이 제공돼야 한다.

1. 독일처럼 가짜뉴스 처벌법 도입? 그런 법 없다

가짜뉴스와 관련한 기사 댓글에는 “독일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독일은 가짜뉴스를 방치하는 소셜미디어 처벌 규정을 명문화하고”(경향신문 보도)처럼 언론이 잘못 전하거나 정치권의 관련 주장을 검증 없이 인용해 왜곡된 사실이 확산된 결과다.

독일에는 ‘가짜뉴스 처벌법’이 없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 4월 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에서 “독일의 관련 법의 이름은 소셜네트워크에서의 법 시행 개선을 위한 법률이고, 그 내용은 혐오표현 방지법이라고 소개되는 게 적절하다”며 “그 법이 적용된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선안이 나오는 것만 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네트워크 법률은 가짜뉴스가 아닌 이미 형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불법 표현물’의 처벌을 소셜미디어 사업자에게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반헌법적인 프로파간다’ ‘반헌법적인 조직의 상징물 유포’ ‘인종혐오’ 등이 해당된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사업자에게 일반적인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가 되어 사업자가 구체적으로 인지한 특정 정보가 불법으로 판단되는 경우에서야 비로소 삭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독일에 '가짜뉴스 처벌법'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iStock
▲ 독일에 '가짜뉴스 처벌법'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iStock

사실 한국에는 독일 네트워크 법률과 유사한 심의제도가 이미 갖춰져 있다. 통신심의규정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비하하는 내용을 비롯해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인종, 지역, 직업 등을 차별하거나 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을 심의대상으로 하고 있다. 관련 심의 건수는 올해 1~7월에만 1041건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913건이 시정요구를 받았다.

2. 혐오발언 처벌법부터 만들자? 역효과 고려해야

최근 국내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조명한 한겨레는 지난 4일 “이참에 독일처럼 혐오 및 차별 발언 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독일의 네트워크 법률을 제대로 설명하는 기사는 ‘혐오차별’ 표현과 관련한 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겨레 보도처럼 법을 만들고 처벌하면 해결이 될까? 혐오차별 표현 법제화의 ‘딜레마’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혐오차별 표현을 형사처벌할 경우 벌어지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법이 기준을 제시하면 처벌을 피하는 표현을 쓰는 전략적인 발화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대신 감정적인 사람들만 심판 받을 우려가 있고 △충분히 문제적인 표현을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제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는 기존의 제도와 맞물려 정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고 △처벌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시행 중인 국가의 실제 집행 내역도 미미하다.

물론 형사처벌이나 사업자 규제 차원이 아닌 ‘혐오차별 표현’에 대한 금지를 선언적으로 제시하는 법 제정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혐오차별 표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전무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3. 프랑스는 선거기간 규제 추진? ‘한국 선관위’가 더 강력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가짜뉴스 규제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언급하는 보도가 나온다. JTBC 뉴스룸은 지난 3일 ‘팩트체크’를 통해 독일 사례와 더불어 최근 프랑스에서 추진된 규제방안을 설명하며 “선거 기간에 한정해서 소셜미디어상의 거짓 정보를 법원이 판단해서 차단하거나 삭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세 나라(독일, 영국, 프랑스) 모두 논란을 겪고는 있지만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를 규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 사이버상 선거법 위반 게시글 조치사항. 허위사실 게시글 삭제 요청은 '가짜뉴스'규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자료=오픈넷 제공.
▲ 사이버상 선거법 위반 게시글 조치사항. 허위사실 게시글 삭제 요청은 '가짜뉴스'규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자료=오픈넷 제공.

이 보도는 국내에도 관련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시사하지만 프랑스의 ‘선거기간 거짓정보 차단 및 삭제’ 법안보다 강력한 제도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기간 마다 법원이 아닌 선관위 스스로의 임의적인 판단으로 허위사실유포 게시글을 판별하고 ‘삭제요청’을 해오고 있다. 

따라서 선거 때마다 수 많은 게시글들이 삭제되고 있다. 선거기간 허위사실 유포로 삭제된 게시글은 20대 총선 때 2880건, 19대 대통령 선거 때 2만5111건에 달한다. 20대 총선 때 삭제된 게시글 가운데는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라고 나경원 의원의 딸이 면접 중 발언한 것)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는 취지의 MLB파크 게시글을 포함한 나경원 의원 자녀의 부정입학 의혹을 언급한 글 다수가 포함됐다.

선관위의 ‘삭제 요청’은 삭제 요청이지만 삭제하지 않으면 선거법상 책임을 묻기에 사실상 삭제 행위와 다름 없다. 사업자들의 이의제기는 극히 드물다. 지난 총선기간 사업자가 선관위 요청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국내 커뮤니티와 포털은 물론 페이스북, 트위터를 포함해 단 1건도 없다.

▲ MLB파크의 댓글. 지난 총선 기간 이 댓글은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 MLB파크의 댓글. 지난 총선 기간 이 댓글은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4. 한국에는 진짜 뉴스도 없애는 ‘끝판왕’ 있다

손지원 변호사는 “한국은 이미 다른 나라보다 굉장히 과도한 표현물 규제 법규가 있다”고 지적하며 앞서 언급한 사례를 비롯해 인터넷상의 임시조치 제도를 문제로 지적했다. 

임시조치는 댓글, 블로그 게시글 등이 사실이어도 차단하고 삭제한다는 점에서 해외의 어떤 가짜뉴스 규제보다 강력하다. 특정 게시글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당 게시글을 30일 동안 무조건 차단하고 이 기간 동안 이의제기가 없으면 삭제하는 정책이다. 권리침해 신고는 무조건 수용하는 반면 게시글을 차단 당한 이용자가 이의제기를 하는 절차가 복잡해 삭제되는 글이 부지기수다.

이 제도에 의해 정치인이나 기업인과 관련한 불편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물론 특정 업체의 제품을 비판하는 내용의 후기까지도 사라지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국내 양대 포털의 임시조치 건수는 네이버 164만3528건, 카카오 44만2330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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