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 쿠데타 세력은 언론인 대학살을 자행했다. 그들은 5월 광주민중항쟁의 실상을 보도하기 위해 결연하게 맞섰던 언론인 1천여 명을 ‘반국가적 언론인 숙정’등의 명분으로 언론사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38년이 지났다. 그 언론인들 가운데는 이미 고인이 된 분들도 있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분들도 많다.

언론인들은 그동안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를 결성하여 어려운 가운데서도 ‘언론 바로 세우기 투쟁’을 지속해 왔다. 국가를 상대로 광주 항쟁과 관련한 언론인 대학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을 파괴하는 불법적인 저열한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쳐왔다. 그 결과 반민주적 과거사 조사 등을 통해 ‘80년 언론인 대학살은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폭거’였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군부의 폭압을 징치하고 해직 언론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확실한 국가적 조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해직 언론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거의 망각의 지대로 밀려남으로써 군부가 조작하고 퍼뜨린 ‘언론인 정화’ 수준에 아직 머물러 있다. 권력의 강제해직과 관련한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언론인 해직은 언론이 자초한 것이며, 언론사의 자의적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비통하다.

▲ 9월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 사회를 맡은 송정민 전남대 명예교수가 ‘1980년 언론 투쟁과 한국 민주화 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송정민 교수는 1980년 당시 CBS 기자로 있다가 강제해직 당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 9월지난 6일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 사회를 맡은 송정민 전남대 명예교수가 ‘1980년 언론 투쟁과 한국 민주화 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송정민 교수는 1980년 당시 CBS 기자로 있다가 강제해직 당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오늘을 살려는 것은 썩은 기둥으로 집을 짓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권력의 대 언론 탄압 폭거의 죄를 묻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의 미래’는 없다.

지역을 넘어 5·18 항쟁을 전국으로 확대

80년 언론인 대학살을 정식으로 규명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광주항쟁의 ‘지역화’를 비롯한 ‘폄훼와 왜곡’을 끝장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신군부 지지자들을 포함한 일부 몰지각한 세력들은 광주항쟁을 끊임없이 난도질해왔다. 정부가 광주항쟁을 군사반란에 맞서 싸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하고 그에 따른 국가적 조치들을 취했음에도 이 세력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광주항쟁은 광주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발발한 북한 간첩들과 폭도들이 합세한 난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항쟁 취재와 보도를 위해 언론 직을 걸고 뛰다 쫓겨난 언론인들도 간첩의 사주를 받아 폭도에 합세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광주항쟁을 목격하고 그 내용을 사실대로 전하고자 노력한 해직 언론인들의 정당성이 인정될 때 광주항쟁은 비로소 수십 년을 옭아매온 잔인한 왜곡과 폄훼의 틀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둘째, 우리가 국가발전의 근간으로 추구해온 ‘민주적 자유언론’체제에 대한 역사적 소명을 내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과거사를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자유로운 언론 없이 흥한 나라는 없다.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여 국가를 지배했던 나치즘은 수없이 많은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결국 독일의 패망을 불러오지 않았는가.

셋째, 불법적인 행위를 응징하여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언론 파괴는 헌법에 반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반 헌법 행위들을 묵인하거나 용인하는 사회에서는 정의가 살아날 수없다. 백주에 광주를 살상한 군부의 행위를 두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검찰의 탈법적이고 반역적인 언설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활개 치는 사회에서 어떻게 정의가 살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기레기 낙인, 부역 언론의 치명적 결과

넷째, 언론의 본분을 말살한 언론 내부의 부역을 청산하기 위해서다. 불행하게도 우리 언론은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인 부역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일제식민지배하에서의 망국적 친일 언론 부역 행위는 박정희 군사쿠데타, 유신체제, 그리고 80년 신군부에 이르기까지 추종과 아세의 형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특히 80년 일부 언론은 자기 언론사의 운영에 비판적인, 이른바 ‘껄끄러운 언론인들’을 군부의 해직자 명단에 끼워 넣어 쫓아낸 비윤리적인 행위마저 서슴지 않았다. (언론 내부 인사들이 작당하여 반대편의 기자들을 몰아냈다는 풍문들은 국회 청문회를 통해 사실로 밝혀진 바가 있다.) 권력에게 비판의 펜을 선물한 ‘기레기 언론’이라는 오늘의 슬픈 현실도 어떻게 보면 언론 부역이 낳은 치명적 결과가 아닐 수 없다.

▲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회 시작 전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기획 세미나, 80 해직을 말한다’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회 시작 전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국가가 80년 언론인 대학살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조치들을 취하고 나설 때 광주항쟁은 그 정당성을 완전히 회복하는 마지막 장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언론을 통하여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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